산업 산업일반

[제2의 롯데사태 막자] 재벌가 싸움 많은 이유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04 17:29

수정 2015.08.04 22:34

40대그룹 중 절반이 경영권 다툼.. '원칙 없는 기업승계'가 만든 참사
상속·증여세율 너무 높아 형제간 균등 상속 어려워 선진국은 세부담 완화 추세

한국 재벌가의 슬픈 가족사가 또다시 되풀이됐다. 이번에는 롯데그룹이다.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장남이 고령의 부친을 앞세워 쿠데타를 시도하다 불발에 그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홍에 휩싸였다. 여론의 뭇매까지 맞으면서 롯데그룹은 창립 이후 최대 위기에 놓였다.

이처럼 재벌가 경영권 다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주요 계열사 지분에 대한 교통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승계 원칙을 세워 한국식 가족경영의 장점을 살리는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40대그룹 2곳 중 1곳은 내홍

4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국내 40대그룹에서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곳은 모두 18곳이다. 2곳 중 한 그룹은 내전을 겪은 셈이다. 가족 간 다툼에는 고령의 창업주, 형제 간 반목, 불명확한 지분 정리 등의 공통분모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상당수 재벌기업들의 2세 승계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가를 꼽을 수 있다. 현대그룹은 2000년 현대차 경영권을 놓고 '왕자의 난'을 겪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5남 고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했지만 2남 정몽구 회장이 반기를 들었다. 그결과 현대그룹은 현대차·중공업·현대 등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두산그룹은 2005년 고 박두병 창업주의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이 물러나고 3남인 박용성 회장이 취임하면서 형제 간 다툼이 시작됐다. 일부 계열사를 경영하려던 박용오 전 회장은 형제들을 비자금.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결국 박용오 전 회장은 가문에서 제명됐다. '형제의 난'이 진행 중인 기업들도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효성그룹이 그런 사례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를 놓고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반목하게 됐다. 2009년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은 도를 넘어 다음 해 계열 분리로 치달았다. 이후 형제는 수년간 각종 법정 다툼을 이어오고 있다.

효성그룹은 조석래 회장의 차남 조현문 변호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 조현문 변호사는 2013년 3월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법률가로 새 출발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형인 조현준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며 효성가도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이 밖에 한진·한화·CJ·대림·코오롱·한라·태광·대성 등 상당수 그룹들이 혈족 간 분쟁을 겪었다. LG·GS·LS·LIG 등은 별다른 분쟁 없이 계열분리에 성공해 성공적인 가족경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정부는 규제 풀고, 기업은 승계 원칙 세워야

전문가들은 재벌가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형제 갈등의 원인으로 높은 상속세율과 증여세율을 꼽고 있다. 현재 세제상 형제가 비슷하게 회사를 나눠서 물려받기 힘든 구조여서 핵심 계열사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의 씨앗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프랑스를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은 상속·증여세 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미국·독일·일본 등은 기업의 지속적 운영을 위해 기업의 가업상속 및 증여를 통한 가업승계에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정승영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업의 국제적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상속·증여세의 과도한 부담은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가족 재산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상속·증여세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승자 독식 구도 역시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상당수 재벌 기업들이 창업주나 총수의 판단에 따라 경영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러다보니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벼랑 끝에 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승계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불투명한 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애 한국식 가족경영의 장점을 살려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충정의 설립자 황주명 회장은 "국내 상당수 대기업들은 장래 승계 절차를 제대로 공개한 곳이 거의 없다"며 "승계에 대해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가족기업이 번영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ironman17@fnnews.com 김병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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