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문을 열기 전까지는 그저 관객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무대와 객석은 없고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의 렉싱턴 호텔 로비다. 생소한 광경에 여기저기서 "우와"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관객들은 관광객 마냥 안내 데스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방명록에 이름도 남긴다. 이제부터는 이 호텔의 투숙객이다. 체크인을 도와 줄 사람은 없고 661호가 단 하나의 선택이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는 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살인과 음모의 목격자가 된다.
오는 9월 2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인기 폭발이다. 한번에 딱 100명만 수용할 수 있는데 연일 만석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된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 연출이 관객에게 전에 없던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공연장은 객석이 있다는 것만 빼고는 영락없는 호텔방이다. 어두컴컴한 방문을 열면 오른편에 화장대와 옷장이 붙어있고 반대편 창문 앞에는 침대가 놓여있다. 24㎡(약 7평)이 채 안 되는 이 공간을 중심으로 양쪽에 객석이 4줄씩 가파르게 배치돼 있어 착석하기까지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럽다. 그러나 일단 연극이 시작되면 밀폐된 공간, 좁은 객석의 불편함은 오히려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를 낸다.
공간 외에도 관객의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잔뜩이다.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세 가지 사건을 3부작으로 구성했는데 장르도 다 다르다. '갱스터 느와르'라는 큰 틀 아래 코미디 '로키', 서스펜스 '빈디치', 하드보일드 '빈디치'까지 3가지 장르로 3개의 사건이 펼쳐진다. 기존의 옴니버스식 연극과는 달리 세 편이 연달아 상연되지 않는다. 평일에 두편, 주말에 세편 공연하는데, 다 보려면 티켓을 세 번 사야한다. 그런 번거로움조차도 새로워서 재미다. 이 공연 티켓 관계자에 따르면 세 편을 연달아 보기 위해 이틀 연속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상당하다.
세 편을 다 보지 않아도 극을 이해하는 데에 문제는 없다. 1923년, 1934년, 1943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다른 사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예 안 보면 안 봤지 한 편만 보고는 못 배긴다. 세 편의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빨강 풍선은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의미로 등장하고 매번 독약을 숨겨놓는 곳은 환풍구다. 또 '로키'의 주인공이었던 쇼걸 롤라 킨은 '빈디치'에서 말린의 친구로 언급되고 "전형적인 범인의 대사"라는 대사는 각 장르별로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변주된다.
숨막히는 호흡으로 빠른 전개의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입이 떡 벌어진다. '영맨' '올드맨' '레이디'를 맡은 세 배우가 각 에피소드에 모두 등장해 기본적으로 1인 3역이다. '로키'의 경우 '영맨'과 '올드맨'은 목소리 연기까지 포함해 그 안에서만 4개의 역할을 소화한다. '올드맨' 역 이석준·김종태, '영맨' 역 박은석·윤나무, '레이디'역 김지현·정연이 각각 더블 캐스트로 출연한다. 전석 3만원. (02)541-2929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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