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을 보고 멀지만은 않게 느껴지던 상하이를 최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영화와는 전혀 다른 맥락의 방문이었지만 뜻밖의 먹먹한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진자샹 성당에서 열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서품 170주년 행사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남성합창단이 '레퀴엠(만가·진혼곡)' 연주차 참가했던 것이다.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로서 가톨릭에서 성인품에 오른 분이다.
'암살'의 시대상황보다 100년 앞선 1845년 8월 17일 김대건 신부가 서품을 받은 곳이 바로 진자샹 성당이었다.
중국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공식적으로는 애국교회(愛國敎會)만을 인정하고 있다. 공산당이 통제하는 틀 안에 가톨릭도 불교도 존재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가톨릭의 경우 로마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체 양성한 신부도 있고 주교도 자체 임명했다지만 로마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현지의 한인 교우 공동체가 이번 행사를 준비한 것이었다.
첫날 헝탕 성당을 방문했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서품 일주일 후 첫 미사를 봉헌한 곳으로 푸시 지역의 약간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 첫눈에도 낡고 위태로워 보였는데 조만간 헐릴 수도 있다는 것이 현지 안내자의 설명이다. 허름한 고딕식 종루 아래로 함석 지붕과 목조 바닥으로 이루어진 성당 내부는 중국의 전통과 서양식 문화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개화풍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정면 제대 양 옆에 갓을 쓴 김대건 신부와 한복 차림의 성모 마리아상이 모셔져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 중국에 한복차림 성상(聖像)이 모셔져 있다니…. 갑자기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들 같은 느낌이었을까, 누군가의 제안으로 즉석에서 '아베마리아'를 봉헌하기로 했다. 서양식과 중국식, 한국식 문화가 뒤섞인 채로 보존돼 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170년 만에 당신이 사랑하시던 양떼의 후손들이 불러드리는 성가!
비록 아무도 없는 빈 성당, 복장도 갖추지 못한 즉석연주였지만 목소리는 맑았고 마음은 하나였다.
노래 도중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동에 젖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행사장인 진자샹 성당은 푸둥지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새로 지은 건물이어서 아쉽게도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원형을 보존하려고 이곳 한인교회가 노력했지만 당국에 의해 결국 이전 신축되고 말았단다.
다만 성당 옆에 붙은 작은 경당이 김대건 신부를 기리고 있는데, 한인 건축가가 설계해 나무배(木船)를 모티브로 한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작은 공간이 김대건 신부가 서해 바다를 건너던 배의 실물 크기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작은 배로 조국의 양떼를 돌보고자 목숨을 건 위험한 항해를 마다하지 않았던 당시 스물여섯 꽃다운 젊은 사제의 열정과 믿음에 다시 한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김대건 신부에게 바치는 레퀴엠은 그래서 더욱 간절하고 엄숙했다. 실제 그 배는 표류해 제주도에 기착했다가 나중에야 당진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가.
역사를 더듬어 보면서 선조들의 생각과 숨결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이 오늘의 우리와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한 것 아닐까. 직접 역사의 현장에 서면 책에서 또는 들어서 알던 것과는 다른, 내 삶에 녹아드는 생생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헝탕 성당이 헐리지 않고 계속 보존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라져간 역사의 흔적에도 만가를 바친다.
김대희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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