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예식·신혼여행비 저물가 안통하는 결혼시장
평균 결혼비용 2억 넘어.. 주택마련 부담이 가장 커 커플통장으로 미리 준비도
평균 결혼비용 2억 넘어.. 주택마련 부담이 가장 커 커플통장으로 미리 준비도
결코 많은 돈을 모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 준비라는 게 생각보다 지출이 상당하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신혼집을 구하고 예물과 예단을 마련하며 신혼여행까지 준비하자니 도무지 계산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과 현실은 정말 다르다. 1000만원으로 결혼을 했다는 선배들의 말은 다 거짓 같다. 물론 1억5000만원이 결혼을 준비하는 데 넉넉한 금액이 아니다. 전세자금으로 쓰기에도 빡빡한 숫자다. 훨씬 넓은 집에 화려한 웨딩을 준비하는 '잘나가는' 주변 사람들의 사례도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나의 삶 자체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직장생활 십수년 동안 화려하진 않았어도 나름대로 정직하게 생활하며 저축을 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허투루 돈을 쓴 적 없다. 내년 봄 결혼식 당일까지 여러 가지 돈이 나올 만한 궁리를 했지만 딱히 답답한 속을 풀어줄 만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요즘은 '조금 일찍 현실에 눈을 떠 돈이 되는 일을 찾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서울 강남 30대 후반 직장인 박홍기씨.이하 모두 가명)
■주택 구입은 '언감생심'…전셋값 하락 '딴 나라 이야기'
어렵게 일자리 관문을 통과한 처녀, 총각들이 결혼의 언덕 앞에서 또다시 한숨을 내쉬고 있다. 당연히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결혼임에도 '경제외 비용'라는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결혼을 염두에 두고 알뜰살뜰히 돈을 모으지만 오르는 물가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소비자물가가 11개월째 0%대를 유지하고 있다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토로다.
발품을 팔아보지만 적당한 전셋집은 찾기 어렵다. TV와 신문에서 연일 떠드는 전셋값 하락은 어느 지역, 어떤 아파트를 일컫는지 궁금하다. 아파트 구입은 언감생심이다. 여기다 웨딩홀, 예물, 예복, 신혼여행 경비까지 춤을 춘다.
실제 통계청이 올해 4월 발표한 '2014년 혼인.이혼통계'를 보면 신혼부부 한 쌍의 평균 결혼비용은 2억3800만원에 육박했고 이 가운데 주택비용이 가장 큰 비중인 71%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30대 초반 사무직 남성의 평균 연봉이 3800만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혼비용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추정 가능하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전년보다 1만7300건(5.4%) 감소한 30만5500건으로 집계됐다.
한국소비자원이 2013년 조사한 결혼비용 실태 및 소비자인식 조사에서도 예비부부의 결혼 비용은 2003년 9088만원에 불과했으나 2005년 1억2852만원, 2007년 1억7245만원, 2009년 1억7542만원, 2011년 2억808만원 등 갈수록 올랐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항목별로 보면 통상 신부가 시댁에 하는 예단의 경우 평균 665만원, 신랑.신부가 주고받는 예물은 737만원이었다. 혼수 평균은 1594만원으로 집계됐다.
신랑.신부에게 결혼 주요 비용에 대한 부담감 정도(5점 만점)를 묻자, 주택마련이 4.4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예단(3.64), 혼수(3.63), 예물(3.62) 등 순이었다.
■'돈 때문에 다툼' 바로 나의 얘기
김정희씨(35.여)는 며칠째 속병을 앓고 있다. 남자친구와 미래를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결혼을 준비해 나가고 있으나 돈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지 못했다. 결혼자금 5000만원을 아버지 사업자금으로 건네준 뒤 아직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
급한대로 언니와 오빠에게 빌려다 쓰고 있는데 언제까지 비밀로 간직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신랑은 '한번 뿐인 결혼'이라며 5부짜리 다이아반지와 귀금속 세트, 명품가방까지 예물과 선물로 준다고 한다. 어림잡아도 700만~800만원은 훌쩍 넘는 가격이다. 전셋집을 구하는 데도 돈을 보태지 못했다. 고맙지만 마음은 갈수록 무겁다. 결혼에서 경제력은 서로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데 자신의 지갑 사정은 그렇지 않아서다. 이제라도 의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김씨는 몇 번이나 다짐한다.
자영업자 구희환씨(38)는 얼마 전 예비신부와 크게 다퉜다.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싸울 일이 많다고 했지만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그다. 전셋집을 보러 다니면서 예비신부의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혹시'는 '역시'가 됐다. 예비신부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구씨 자신도 속이 상했다. 그러나 주말쯤 사정에 맞게 결혼을 하자고 설득해볼 생각이다. 구씨는 "결혼자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며 "예비신부도 이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최익현씨(35)의 결혼준비는 조금 다르다. 그는 결혼비용 때문에 갈등을 겪는 예비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결혼이 결정된 이후 아예 공동의 통장을 하나 마련했다. 여기에 자신이 준비한 1억2000만원과 예비신부의 돈 4000만원을 함께 넣어놓고 전셋집 구하기부터 예물, 예단 등 모든 준비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씨는 "내 돈, 우리 집 돈, 네 돈, 너희 집 돈을 따지지 않게 되니 자연스럽게 다툴 일도 줄었다"면서 "다만 결혼자금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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