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마지막으로 한국과 필리핀의 우호 관계를 담았던 필리핀 500페소 구권이 폐기되고 5년 전 통용되기 시작한 신권이 이를 완전히 대체한다.
2년 전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직접 지갑에서 꺼내 우호를 다졌다는 그 지폐다.
500페소 구권 뒷면에는 '38선', 'Korea', 'Seoul', 'Kaesong(개성)' 등 한국을 지칭하는 나타낸 글귀와 함께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 모습을 묘사한 삽화가 포함됐지만 신권은 희귀 조류의 그림으로 확 바뀌었다.
이면에는 구권 뒷면 삽화에 나타난 한국의 모습이 지금과 국력 차이가 커 이를 반영해 달라는 우리의 외교적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10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1987년부터 약 30년간 유통됐던 필리핀 통화 500페소 구권이 올해 폐기된다. 2010년 필리핀 중앙은행이 구권을 대체할 신권을 발행해 융통한 이후 5년 만이다.
주목을 끄는 건 구권의 교체 배경.
통상 20~30년의 화폐 유통기한을 고려하더라도 이같이 전면적으로 화폐 도안을 교체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필리핀 중앙은행이 신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하기 전부터 우리 정부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삽화를 교체해 줄 것을 요청했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500페소 속 우리 국민의 모습은 지금과는 크게 다르다. 해당 화폐 뒷면에는 필리핀 군인이 등장하고 이들에게 꽃을 팔려는 소녀와 초콜릿을 구걸하는 듯한 소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국 전쟁 당시 전형적인 한국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력이 역전됐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원조로 채우던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3위 경제 대국이 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필리핀 중앙은행이 신권 도입시 양국 국력차를 반영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의 GDP규모는 한국보다 세 배 가량 많았지만 지금은 한국이 필리핀보다 10배 이상 경제 규모가 크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타국 화폐 도안에 대해 정식으로 변경 요청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정책 제언이나 협의 아젠다로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구권 뒷면 왼쪽에는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필리핀의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 전 상원의원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의 아버지다. 지폐 속 아키노 전 의원은 군복 차림에 펜과 카메라를 들고 있다. 17세의 최연소 종군기자로 한국전쟁을 취재했을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화폐에 담긴 '마닐라 타임스' 기사에는 '38선', 'Korea', 'Seoul', 'Kaesong(개성)'등의 한국지명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