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정치혁신을 위한 도전과 실험들 (5) 선거펀드의 명암
1. 개인끼리의 돈거래입니다
공개 차입으로 이뤄지는 대출의 한 형태로 보면 됩니다. 사실상 개인과 개인간의 금전거래입니다. 선관위와 정당에서 관여하지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2. 이자소득은 소득세법이 적용됩니다
금융기관 이자소득은 세율이 14%지만, 선거펀드는 비영업대금의 세율 25%를 적용받습니다. 이자소득과 지방소득세를 합쳐 27.5%를 뗍니다.
3. 지지후보에 대한 정치참여입니다
선거펀드 자체가 선거운동 전략의 하나입니다. 유권자 입장에선 정치 참여와 금전적 이득을 볼 수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4. '먹튀조심' 원금 떼일 수 있습니다
후보자가 낙선해도 득표율 15%만 넘으면 선거보전금을 돌려 받습니다. 하지만 후보자의 재무상태에 따라 펀드 원금은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5.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
유력 후보자에게만 투자가 몰립니다. 전문가들은 대선이 아닐 경우, 굳이 선거펀드를 운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 직장인 이모씨(26.여)는 3년 전 대선을 앞두고 한 후보의 펀드에 10만원을 넣었다. 절차는 생각보다 쉬웠다. 웹사이트에서 '클릭' 한번으로 펀드에 가입하고 계좌에 투자금을 입금하면 끝이었다. 이씨는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데 손쉬운 방법으로 정치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서 뿌듯했다"면서 "딱히 이자를 받으려 한 일은 아니었지만 돈이 더 붙어서 돌아온 듯 하다"고 말했다.
'선거 펀드'가 정치인이 선거자금을 마련하는 하나의 창구로 자리잡고 있다. 3년 전 대선에서의 선거 펀드 열풍에 이어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도 활발히 운영됐다. 이에 내년 총선에서도 선거 펀드 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후원금, 선거보조금, 금융기관의 대출 등으로 충당하던 선거 자금을 보다 쉽게 마련할 수 있는 통로인데다가 목표금액 달성으로 정치인으로서의 '가치'와 지지 기반을 과시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유권자 또한 정치에 참여하는 만족감과 함께 경제적 이득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잘 굴러갈 때 얘기다. 낙선 후 후보자의 '먹튀 논란'이 속속 발생했으며 선거 자금의 '빈익빈 부익부' 우려 등 부작용도 함께 지적돼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이름만 '펀드', 사실상 '개인간 금전거래'
'선거 펀드'는 통상 금융·증권업계에서 말하는 펀드와는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우선 일반적인 펀드라면 투자 비용을 잃게 될 위험 부담이 있지만 선거 펀드는 대부분 원금상환 보장에 이자까지 약속한다. 선거 후보자가 다수의 지지자로부터 일정액을 투자받아 선거비용으로 쓰고, 선거가 끝난 뒤 득표율 15%이상을 얻어 선거 비용 보전분을 받으면 약속한 원금에 임의의 이자를 붙여 투자자에게 되돌려 주는 방식이다. 공개 차입으로 대출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명칭만 펀드지 사실상 '개인과 개인 간의 금전거래'라고 보면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정당 측도 따로 선거펀드에 관여하지 않는다. 중앙선관위 정당과 관계자는 "선거 펀드라는 용어부터가 공식적인 표현도 아니고 법적 용어도 아니다"면서 "정치인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공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관위에서 별도로 내역을 파악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도 "대선을 위한 펀드가 아니고서야 당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은 없다"며 "후보자 캠프에서 알아서 해결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반면 투자자가 얻은 이자 소득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소득세법이 적용된다. 국세청은 선거 펀드 운영자에 대해 이자소득 세율 25%를 적용해 세금을 원천 징수하고 있다. 금융기관 이자소득 세율(14%)이 아닌 비영업대금의 세율이다. 100만원을 투자해 이자 소득 10만원이 발생했다면 이자소득과 지방소득세를 합한 27.5%를 감안해 2만7500원을 징수하고 투자 원금 100만원을 포함, 107만2500원이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 지지기반 홍보, 정치 참여 효과 톡톡
선거 펀드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유시민 펀드'를 결성한 것이 시초다. 당시 유시민 펀드는 출시 3일 만에 41억원을 거둬들이며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다. 뒤이어 지난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문재인 당시 후보가 각각 출시한 '박근혜 약속펀드'와 '담쟁이 펀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선거 펀드가 선거 운동 전략으로 힘을 발휘한 사례다. 선거자금 해결은 물론이고 언론 홍보와 국민 참여를 이끄는 데 효자노릇을 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정치참여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금전적인 이득을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내년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벌써부터 선거펀드 조성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예비역 준장을 지낸 박견목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정책자문위원은 최근 '새바람펀드'를 만들고 1억 모집을 목표로 잡았다.
다만 내년 총선에서는 지난 6.4 지방선거 때나 2012년 대선만큼의 '열풍'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정당 재정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새누리당 총무과 관계자는 "총선 선거비용은 1억5000만~2억원 초반 정도여서 펀드 수수료와 펀드를 관리할 추가 인력 충원을 고려하면 후원금으로 하는 것이 용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선 때 후보자는 후원회를 두고 1억5000만원까지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다.
후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데 굳이 원금 상환의 리스크가 있는 선거펀드를 모집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당선되거나 일정 득표율 이상을 얻지 못했을 경우 원금 상환 부담은 고스란히 후보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후보자가 난립할수록 선거펀드는 점점 더 '고위험 상품'이 된다.
■먹튀·선거자금 빈익빈 부익부 우려
결국 선거펀드는 후보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위험부담이 있는 선거자금 모집방식이다. 선거펀드 출시 직후 후보자가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겠다고 큰소리 쳐도 낙선할 경우 이렇다할 대책이 없다.
실제로 지난해 6·4지방선거 당시 일부 후보자들이 제때 원금을 값지 못해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제주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한 후보는 득표율 15%를 아깝게 넘지 못해 절반의 선거 보전금만을 돌려받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선거운동 관련 미납금액으로 지출돼 투자자들에게는 한푼도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일부 금액을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법적 권리까지 획득했다.
15% 이상의 득표율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후보자의 재무 상태에 따라 원금상환이 어려울 수 있다. 가령 지난 6·4 선거 때 교육감 후보로 나온 조전혁 전 의원의 경우 26.11% 득표해 선거 비용을 전액 돌려받게 됐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와 별건으로 걸린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되며 일부 보전금액을 압류당했다.
이에 선거펀드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선거펀드는 금융상품으로 취급되지 않아 일반 펀드와 달리 유사수신행위를 금지한 현행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금융감독당국의 감시권 밖에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선거 후 후보자가 펀드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사후 민사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임성학 시립대 정치학 교수는 "후보자가 파산할 경우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은 큰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 부교수는 "투자 리스크가 뒤따르는 만큼 과연 일반 펀드와 마찬가지로 투자자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정치인들의 재정상태나 일정 득표율을 넘길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도록 심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펀드로 인한 정치자금의 '빈익빈 부익부' 우려도 나온다. 투자자들은 후보자의 인지도를 따라 움직이기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정치 신인들은 점점 더 관심 밖으로 물러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정치 관계자는 "선거 펀드도 인맥에 좌우된다"며 "지난 대선 때도 후보자 지지 의원들이 십시일반하거나 자기 지구당 내에서 일정 금액을 할당받는 식으로 펀드 목표액을 채웠다"고 귀띔했다.
이상돈 중앙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선거펀드가 100% 유권자의 자발성에 의해 모집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며 "선거펀드의 효용성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 오히려 자칫 선거 자금의 빈익빈 부익부가 일어날 수 있다"고 꼬집었다.
hiaram@fnnews.com 신아람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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