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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83) 서울서부지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냉정하게 원칙만 따지기보다 피해자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입니다"

이승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23 18:02

수정 2015.12.23 21:55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83) 서울서부지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냉정하게 원칙만 따지기보다 피해자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입니다"


서울서부지검 1층
공익법무관 3년차인 반영기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은 범죄로 아버지를 잃은 피해자와 상담 중이었다. 40분이 넘게 경청하며 틈틈이 메모했다. 법무담당관 근무가 끝나면 검사로 임용될 그는 법조인 특유의 원칙적 성향이 가장 경계할 요소라고 말한다.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이란?
대검찰청과 17개 지방검찰청에서 공익법무관 38명이 같은 일을 맡고 있다. 피해자의 상담의뢰서를 보고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올 10월까지 법률상담만 14610건, 경제적 지원 1827건, 조력기관 연계 6297건, 신변보호 1099건을 지원했다.

범죄피해구조금 받으려면…
지원여부는 심의회를 열어 결정된다. 피해를 당하고도 받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직접 발굴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생활 형편이 어려운 피해자들이 많아 가능한 빠르게 지원토록 노력한다.

반영기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이 서울 마포대로 서울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피해자 상담기록을 정리하고 있다.
반영기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이 서울 마포대로 서울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피해자 상담기록을 정리하고 있다.


얼마 전 A씨의 아버지는 동네 주민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사망했다. 1심에서 가해자는 살인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법원 판단으로 살인죄를 면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 인해 A씨 가정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어머니와 누나는 정신적 충격으로 심리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A씨와 형은 처음 겪는 소송 때문에 현업에서 손을 놨다.

지난 18일 오전 10시 A씨는 서울서부지검 1층에 있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찾았다.

A씨를 맞은 사람은 반영기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사법연수원 42기)이다. 공익법무관 3년차인 반 담당관은 올해 초부터 서울서부지검 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며칠 전 반 담당관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권했다.

사건 기록, 상담의뢰서 등 A씨 관련 서류를 살피던 반 담당관은 센터 안에 들어선 A씨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상담실로 향했다. A씨와 마주 앉은 반 담당관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힘든 상황에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해자 상담, 지원 요건보다 배려가 먼저

1시간여 상담을 마친 반 담당관은 메모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체크한다. 형사소송을 진행 중인 A씨는 수사기관에 대한 불만이 컸다. 사건 처리 경과, 재판 진행 절차 등 수사·사법기관의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거듭 강조했다. 더욱이 1심 판결에서 가해자에게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에 흥분한 상태였다.

반 담당관은 상담을 시작하고 40분 이상을 A씨의 말을 경청하며 틈틈이 메모했다. A씨의 말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때쯤 반 담당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후 10여분은 A씨가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에 대한 소개와 설명이 이어졌다. A씨의 상담결과 문서에는 '형사절차 안내' '어머니 치료와 생활비 지원 검토' 등이 적혔다.

반 담당관은 법조인 특유의 원칙적인 성향이 현재 근무에서는 오히려 경계해야 할 요소라고 말한다.

그는 "피해자가 지원요건에 맞는지를 판단하는 데 상담의 초점이 맞춰지면 피해자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기 힘들어진다"며 "상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피해자 사연을 충분히 들어주는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했다.

■법무담당관, 찾아가는 서비스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은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으로, 피해자지원 업무를 위해 각 검찰청에 파견된 법률구조업무 담당 공익법무관이다. 이들은 각 검찰청의 공익법무관실 또는 검찰청 관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근무한다. 반 담당관과 같이 각 검찰청에 파견돼 범죄피해자 지원을 위한 공익법무관 근무를 하는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은 총 38명이다.

지난 2013년 4월 대검찰청과 17개 지방검찰청에 18명의 공익법무관이 처음으로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으로 배치됐다. 범죄피해자에 대한 법률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는 일선 검찰청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2013년 8월에는 서울중앙지검, 서울동부지검 및 8개 차치지청(차장 검사가 있는 검찰청)에 10명의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이 추가 배치됐다. 이후 일선청의 확대 요청으로 여주, 천안, 원주, 포항 등 부치지청(차장검사 없이 부장검사가 지청장을 맡는 소규모 검찰청)에도 공익법무관이 배치되면서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은 꾸준히 늘고 있다.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자 상담의뢰서 또는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의 사건 기록 등을 검토해 정부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 상담을 권유하고 실제 지원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행정적·법률적 지원을 전담한다는 얘기다. 지난 10월까지 전국의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은 법률상담 1만4610건, 경제적 지원 연계 1827건, 조력기관 등 연계 6297건 그리고 1099건의 신변보호를 지원했다.

■피해자 권리구제 '허브'..사각지대 차단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의 구체적인 업무는 크게 △법률 지원 △범죄피해구조금 지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마친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은 전문적 영역인 법률 상담을 전담한다. 범죄 피해에 대해 상담하고 향후 권리구제 절차 등을 안내해 가장 적합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 법정동행, 재판 모니터링, 서류작성 지원, 수사·재판 진행상황 안내 등을 지원한다.

반 담당관은 "보통 재판이 오후에 있기 때문에 피해자 법정동행은 오후에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증인신문 등으로 재판에 출석하는 피해자에게 비공개 심문, 가해자와 격리 등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안내하고 피해자 의사를 법원에 전달해주는 역할 등을 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지원 법무담당관'는 범죄피해구조금심의회의 간사 역할을 한다. 범죄피해구조금은 생명 또는 신체를 해하는 범죄로 인해 사망·장해·중상해(전치 2개월 이상)를 입은 피해자에게 국가가 구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범죄피해구조금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회의 개최 날짜를 잡고 회의에 상정될 안건을 정리하는 등 실무적 역할을 주도한다. 특히 기존의 사건기록에서 범죄피해구조금 지급 미비 사건을 발굴해 범죄피해구조금을 지급하는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반 담당관은 "심의위원들에게 직접 연락해 심의회 개최 날짜를 잡고 심의위원들이 심사할 사건을 정리해서 안건으로 올리는 등 심의회 개최와 진행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를 전담하고 있다"며 "생활 형편 등으로 구조금 지원이 시급한 피해자의 경우 최대한 빠른 조치가 취해질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ee@fnnews.com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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