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통화 가치 하락=수출 증가' 장담 못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28 17:43

수정 2015.12.28 17:43

해외 부품 수입 늘어난 탓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이 늘어난다는 오랜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 교역구조가 변하면서 통화가치 하락의 약발이 예전만큼 강렬하지 않게 됐다. 제조업체들이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비중이 늘어난 탓이다. 예전에는 통화가치가 떨어질 경우 수출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부품 수입가 인상이라는 복병이 있기 때문이다.

WSJ는 올해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완화 정책에 나서면서 '근린궁핍화(자국의 경기 부양을 위해 취한 정책이 이웃 국가를 궁핍하게 만드는 것)'현상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보도했다.
통화 평가절하가 예전처럼 대규모 수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2013년 일본은행(BOJ)은 장기간 침체돼있던 일본 경기를 살리기 위해 엔화 공급을 늘려 약세를 꾀했다. 하지만 이는 수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고 기업들의 체질 약화만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대해 일본은 글로벌 수요가 줄었다는 이유를 대지만 과거에는 글로벌 수요가 약해졌더라도 일본 수출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확대된 사례가 많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지난 3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유로화 약세를 유도했지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빨리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침체된 유럽 경기는 살아나지 못했고 산업생산도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등 ECB의 양적완화는 초라한 성적표를 내놨다. WSJ는 "일반적으로 환율이 교역에 영향을 주기까지 12~18개월가량 걸리는데 유로화는 작년초, 엔화는 3년전부터 약세를 나타냈기에 효과가 나타날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지적했다.

통념을 뒤엎는 이같은 현상은 제조업체들의 높은 해외 의존도 때문이다. 원부자재를 자국에서 충당하는 경우에는 수출 가격 하락만 신경쓰면 됐지만 이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경우에는 수입 가격 인상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무역기구(WTO)가 세계 공급망과 교역흐름을 분석한 결과 각국의 수출제품에서 해외산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증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수출품에서 수입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22.4%에서 2011년 41.6%로 높아졌으며 스위스는 1995년 17.5%에서 2011년 21.7%로 늘었다.


더불어 환율이 수출과 수입에 미치는 영향력도 감소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조사에 따르면 환율이 수출과 수입에 미치는 영향력은 최근 30% 가량 줄었다.
브누아 꾸이레 ECB 이사는 최근 "이전에는 환율이 글로벌 수요를 경기가 좋은 국가에서 약한 국가로 옮기는 '충격 흡수제'로 쓰였지만 이제는 그런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wild@fnnews.com 박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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