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대기업의 총수들은 어떻게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 '순환출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순환출자란 말 그대로 계열사 간 출자를 하는 것으로 서로가 서로의 지분을 갖게 되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그룹 내에 계열사 A, B, C가 있다고 할 때 A기업이 B기업에, B기업은 C기업에, C기업은 다시 A기업에 자본을 대는 방식으로 자본금을 늘리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순환출자가 이뤄지면 실제론 자본금이 늘어나지 않는데도 장부상으론 자본금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즉 '가공자본'인 셈이죠.
그동안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두 기업 간 상호출자는 금지했지만 여러 개의 기업이 돌아가면서 하는 순환출자는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대기업 집단은 이 같은 순환출자 방식으로 그룹의 규모를 확장해왔죠. 그런데 이런 식의 순환출자가 이뤄지면 실제 투자된 자본금 이상의 의결권을 총수가 갖게 됩니다. 물론 새로운 사업진출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출자한 다른 계열사까지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실제 사례도 적지 않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외환위기 당시 쓰러진 대우그룹입니다.
그래서 학계뿐 아니라 경제계에서도 이런 순환출자는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 관련 법집행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규정으로 지난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해 새로운 삼성물산을 만든 삼성그룹이 곤란하게 됐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삼성SDI는 합병을 하기 이전의 제일모직 지분 3.7%와 삼성물산 지분 7.2%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는데, 합병 후엔 새로운 삼성물산 지분 4.7%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이 탓에 삼성SDI와 연관된 '생명-전자-SDI-제일모직-생명' '화재-전자-SDI-제일모직-생명-화재' '물산-전자-SDI-물산' 등 3개 순환출자 고리는 합병 후 신규 출자 효과가 발생하면서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삼성SDI는 추가로 늘어난 통합 삼성물산 지분 500만주를 모두 정리해야만 합니다. 합병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지분을 늘리지 않았지만,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자연스럽게 강화된 것도 공정거래법상 해소요건이라고 본 것이죠. 게다가 삼성그룹뿐 아니라 현대차그룹이나 롯데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도 경영권 승계작업과 맞물려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그룹들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