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1804년 미국 제3대 부통령 애런 버가 해밀턴에게 명예훼손을 이유로 결투를 신청했다.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버와 해밀턴은 뉴저지주 허드슨 강가에 섰다.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총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자리에 쓰러진 것은 해밀턴이었다. 그의 오른쪽 배에선 피가 흘렀다. 해밀턴이 쏜 총알은 버의 머리 위 나뭇가지를 맞혔을 뿐이다. 이튿날 해밀턴은 아내 곁에서 숨을 거뒀다.
버는 살인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지진 않았다. 법원은 부통령의 '살인'을 정당방위로 봤다. 얼마 뒤 버는 현직에 복귀해 임기를 채웠다. 하지만 정치생명은 막을 내렸다. 버는 뉴욕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조용히 생을 마쳤다.
미국 수정헌법 1~10조를 통상 미국판 권리장전으로 부른다. 그중 제2항은 "개인이 총기를 소지.휴대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렇다고 그런 권리를 무한정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연방대법원은 "총기 소지.휴대권리가 총기에 대한 규제를 금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판례를 남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총기난사로 숨진 초등학생들을 언급할 땐 눈물까지 흘렸다. 그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총의 나라' 미국에선 걸핏하면 총기난사 사건이 터진다. 2007년엔 버지니아공대에 다니던 한국계 조승희씨가 수십명을 사살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마 한국이라면 오바마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총기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총기협회(NRA)는 물론 공화당까지 들고 일어났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총기 소유를 허용한 수정헌법 2조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미국은 이민자가 세운 다민족 국가임을 실감한다. 거친 환경 아래서 자기를 보호할 것은 총밖에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해밀턴은 지금 지하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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