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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명장열전](24)도시를 그리는 건축가 김석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1.24 17:38

수정 2016.01.24 22:26

"건축과 도시설계를 병행.. 전세계에 둘 뿐이더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경주 보문단지, 한강 마스터플랜 등을 입안한 우리시대의 건축가 김석철 교수는 "인간은 결국 공동체로 존재한다"면서 "좋은 건축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면서도 최고의 기능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서울대 관악캠퍼스, 경주 보문단지, 한강 마스터플랜 등을 입안한 우리시대의 건축가 김석철 교수는 "인간은 결국 공동체로 존재한다"면서 "좋은 건축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면서도 최고의 기능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20대에 이미 종묘~남산간 재개발계획과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설계했고 서울대, 경주보문단지, 한강 마스터플랜 등을 입안했다. 또 예술의전당, 제주 영화박물관, 한샘디자인센터 등 자연 환경과 어우러진 건축물을 빚어내며 찬사를 받았다.

14년 전 첫 위암 수술을 받고, 또다른 암과 그 암의 전이까지 암과 함께 살아온 세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삶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투병 중에 굳이 일을 쉬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고통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었다.
"작품을 하나 완성하면 날짜와 장소를 쓰거든. '두만강 남북합작도시'를 완성하고서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썼어. '행복한 암 병동에서'"르 코르비쥐에와 견줄만하다. 건축과 도시를 아울러 이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다시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이탈리아 건축계의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는 자신의 저서에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를 이렇게 평가했다. 르 코르비쥐에(1887~1965)는 스위스 태생의 건축가로 '건축계의 성인(聖人)'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김석철 교수는 건축과 도시설계에 있어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대에 이미 종묘~남산간 재개발계획과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설계했고, 서울대 관악캠퍼스, 경주보문단지, 한강 마스터플랜 등을 입안했다. 또 예술의전당, 제주 영화박물관, 한샘디자인센터 등 자연 환경과 어우러진 건축물을 빚어내며 찬사를 받았다. 건축과 도시설계를 병행하는 건축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 둘 뿐. 20세기 최고의 도시설계가로 꼽히는 우량륭 중국 칭화대 건축도시연구소장이 다른 하나다. 그래서 둘은 만나면 "전 세계 우리 둘 뿐"이라며 껄껄 웃는다.

50년 넘게 쉬지 않고 걸작을 탄생시켰다. 설계도를 그리고 그걸 실현하는 작업은 그에게 '마약'처럼 황홀했다. 쉬지 못했고 끊을 수 없었기에 격무는 암으로 돌아왔다. 14년 전 첫 위암 수술을 받고, 또 다른 암과 그 암의 전이까지 암과 함께 살아온 세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2년 전 네 번째 암 수술을 받고서 암이 완전히 퇴치됐다는 얘길 들었지만 매일 아침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지난 22일 서울 동숭동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에서 만난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서 일어난지 20일 쯤 된 것 같다. 그래도 암은 깨끗하게 완치됐다. 의사가 다시 발병하면 이제 내 탓이라고 했다"며 아이같은 미소를 지었다.

완치됐으니 다행이라는 말에 그는 "다행이라는 건 사는 게 더 좋다는 전제가 있는거냐"고 반문했다. "삶과 죽음이 최대 명제가 아니거든. 시간과 공간은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 변하는 것이고, 삶과 죽음은 내 존재의 한 형태일 뿐이지."

삶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투병 중에 굳이 일을 쉬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고통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었다. "작품을 하나 완성하면 날짜와 장소를 쓰거든. '두만강 남북합작도시'를 완성하고서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썼어. '행복한 암 병동에서' 그때 네 번째 수술을 하고 나서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거든. 의사한테 혼쭐이 났지."

'두만강 남북합작도시'는 암과 싸우는 중에도 그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만든 이유다. '두만강 남북합작도시'는 두만강 하구 북·중·러 접경지역에 다국적 자유경제도시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유라시아와 환태평양을 연결하는 관문 도시로서 북한의 경제 개발과 개방을 이끌고 주변국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면 결과적으로 남북한과 함께 중·러·일 등 동북아 국가들이 함께 윈윈(win-win)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실행만 된다면 이만큼 이상적인 도시도 없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같은 계획을 전달했고 지난해 1월에는 전시회를 통해 세간에도 공개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진전은 없는 상태다. "여러가지 사건에 밀렸지. 결국 북한을 잘 살게 만들어주는 프로젝트이기도 해서 민감하기도 하고. 이렇게 깔끔하게 딱지 맞아본 적은 처음이야. 하하."

건축가로 단정짓기엔 그의 지식의 폭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국사와 세계사는 물론이고 물리학, 종교학, 철학, 예술사에서 얘깃거리를 뽑아와 자신의 말을 뒷받침했다. "스티븐 호킹이 나와 동갑이거든. 최근에 그 사람 자서전을 읽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수학적 고뇌가 담겨있더라고. 나도 그맘때 그랬어. 적어도 그 당시에는 내가 그 사람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던 것 같아." 세계적인 물리학자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비교하는 것이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였다. 경기고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그다. 불교 조계종의 토대를 놓은 청담 스님이 "크게 될 아이"라며 불교청년회를 만들고 그를 1대 회장으로 세우기도 했다. "불교신자는 아니었는데 불교 철학에 심취해서 공부를 많이 했었거든. 그런 식으로 여러가지 공부를 했지."

―어릴 때부터 건축에 관심이 있었나.

▲그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주는 끝이 없다'는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안됐다. 실재한다는 건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인데. 이걸 가지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두번째는 피란 때였다. 전국어린이 미술대회가 처음으로 부산에서 열렸는데 학교 대표로 나갔다. 내가 일등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최종적으로 떨어졌다. 태양을 파랗게 그려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나는 보이는 대로 그렸다. 태양의 색깔은 다양한데 그때 파랗게 보였다. 그게 환원염(還元焰) 현상이다. 중학교 때는 김해비행장에서 전국 글라이더 대회가 있었다. 내 글라이더가 비행장 바깥까지 날아갔다. 가장 멀리 날아간 건데 글라이더가 사라졌기 때문에 상은 못받았다.

―건축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했나.

▲고등학교 3학년 때 원서 내기 한달 전이었다. 그때는 공부 잘하면 화학공학과에 갔는데 죽어도 거기는 싫었다. 공부만 아는 공부벌레들만 있으니까.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공부에만 시간을 쏟는 집단에 있기는 싫었다. 수학을 워낙 잘해서 수리철학을 하려고 했는데 졸업 후 선생밖에 할게 없었다. 당시 국민교육헌장 만든 대통령 특보인 박종흥 교수께 자문을 구했다. 영원히 남는, 건축을 추천해 주시더라.

한국 건축계의 양대산맥 김중업과 김수근을 사사했다. 대학을 2년만 다니고 김중업을 찾았다. 그런 학생들이 줄을 선 가운데 그가 간택됐다. 4년간 그 밑에서 건축을 배웠고 김포공항과 조선호텔 프로젝트를 하면서 김수근과 일했다. 29세에는 한국 최초의 도시계획인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주도했고 39세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물리치고 예술의전당을 지었다. 1992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이 처음 제정됐을 때 그가 지은 한샘시화공장은 청와대 별관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했다. 미술관보다 아름다운 예술성에 공장으로서의 완벽한 기능과 '에너지 제로'에 가까운 효율을 겸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 현대 건축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회자되는 이유다. "석유 에너지의 50% 이상을 건축물이 소비하고 있어요. 건축가라면 당연히 신경써야하는 부분인데,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게 문제지."

―한국 건축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

▲과에너지 소비형 건축이다. 에너지의 균형이 안 맞는다. 가령 서울시 청사는 말로는 '에너지 세이빙'이라고 하는데 여름엔 창문도 못 열고 지옥이다. 그런 집을 계속 짓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마약을 매일 먹고 있는 거나 다름 없다. 내가 먹는 진통제가 실제로 마약인데 10년 이상 먹을 수 없단다. 같은 이치다.

―그러면 어떤 건축을 해야 하나.

▲인간은 공동체로 존재한다. 건축도 같다. 도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날 때 그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짓'을 해야 한다. 주변 경관과 어울리면서 최고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제주도에 영화박물관을 지었을 때 주민들에게 욕 먹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해안을 망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주민들이 정말 예쁘다고 칭찬을 많이 했다. 나를 위한 술파티가 열릴 정도였다.

그는 "건축물이 생기면 그 주변이 환해져야 한다. 내가 설계하면 그 일대의 집값이 다 오른다는 건 자부한다"며 해맑게 웃었다. 실제로 그는 명보극장을 짓고 나서 주민들에게 감사패를 받았고 시네시티를 짓고나서 허허벌판이던 도산대로가 번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자신의 건축 노하우와 철학을 집대성한 필생의 역작을 설계하는 중이다. 예정대로 진행하면 내년에는 시공에 들어간다. 바로 '한샘 성체'다. "시장, 공장, 광장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소규모 도시예요. 한샘 디자인센터가 있는 비원 근처에 지을 거예요. 집과 노동현장, 문화공간이 합리적으로 조화롭게 이뤄진 곳이지. 에너지도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이번에도 김 교수의 평생지기인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의 도움이 컸다. 조 회장은 이번 프로젝트에 4500억원을 투입했다. "21세기 도시의 심벌과도 같아요. 도시 수출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더이상 발전이 어려운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거에요."

'도시 수출'은 뜬 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그는 이미 쿠웨이트 자하라 신도시, 중국 진저우 해상공단, 취푸 신도시, 베이징 경제특구, 캄보디아 프놈펜 iCBD, 아제르바이잔 바쿠 신도시 등 다수의 도시설계를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독립투사처럼 말했다.
그에게 건축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건축은 문명의 상형문자와 같아요. 인간은 살다가 가잖아요. 그리고 돈을 좀 남길 수 있겠죠. 그런데 진실한 유산은 건축이지. 그게 내 사명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집을 짓고 좋은 도시를 만들면 후세에 남잖아요. 우리 공동체의 것으로. 저 이북까지 포함해서."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건축가 김석철 프로필
△73세 △함경남도 안변 △경기고 △서울대 건축학과 △서울대 응용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아키반건축도시연구소 설립 △제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이탈리아 베니스 건축대학교 도시설계학과 객원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객원교수 △중국 칭화대 객원교수 △명지대 건축대학장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특별상 △이탈리아 국가문화훈장 △제3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현) △명지대 석좌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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