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슈타지(Stasi) 첩보원이 1984년 작가 드라이만의 집에다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그의 삶과 애정관계를 낱낱이 엿보면서 첩보원 자신이 냉혈인간에서 휴머니스트로 변해 가는 과정을 그린 2006년도 독일 영화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은 당시 동독의 문화·예술·정치 상황을 잘 보여주면서 사찰(査察)이 얼마나 섬뜩한 것인지를 느끼게 한다. 이제는 엄청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수많은 첩보위성 카메라가 지구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주요인물의 일거수 일투족이나 관심물체의 동선을 꿰뚫어보고 있다.
촬영기기의 디지털화·소형화와 촬영기술의 발전으로 바야흐로 영상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기기를 따로 들지 않고 휴대폰만으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휴대폰 카메라(이른바 '폰카')는 가히 혁명적이다. 사진 찍으러 길 나선 듯, 언제 어디서든 소형 카메라나 휴대폰부터 꺼내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사진기자나 리포터, 사진작가가 된 양 친지들과 여행 분위기를 함께 즐기려는지 여기저기 영상을 담아서 카톡이나 밴드에다 올린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자칫 잘못 사용되면 불행의 씨앗이 된다. 재작년 여름 프랑스 여행 중 일행 한 사람이 파리 근교 고성(古城)의 기념품 판매점에서 어린애들이 귀엽다고 근거리에서 사진을 찍다가 옆에 있던 보호자의 거센 항의를 받고 혼이 났다. 우리가 서양사람에 비해 초상권 보호에 대한 법의식이 무딘 데서 비롯된 촌극일까.
초상권 침해의 위험이 가장 높은 영역은 방송 보도나 고발 프로그램이다. '움직이는 사진'이라고 하는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실물보도를 해야 보도의 신빙성과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보도의 내용보다는 영상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끌려는 경향이 강하다. 순간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기자로서는 초상권 시비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로 셔터를 눌러버린다. 그러다 보면 텔레비전 일기예보 프로그램에 나오는 길거리 풍경에 남자친구의 팔짱을 끼고 걷는 여자의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되거나, 근무시간 중 야구경기를 관람하던 직장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바람에 직장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는 등 초상권 침해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본인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언론사의 오래된 자료들이 데이터베이스화되다 보니 수능 성적 발표 때마다 성적표를 들여다 보는 수험생의 긴장된 얼굴이 몇 년째 계속 보여지거나,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톨게이트 창구 직원의 모습이 설·추석 귀성 때마다 자료화면으로 등장한다면 그들의 불쾌감이나 피로감은 능히 예상할 수 있으리라. 초상권 보호범위를 둘러싸고 인격권 보호와 언론 자유, 프라이버시와 알 권리 사이의 논쟁은 풀기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카메라가 소형화하면서 볼펜·안경·모자 등 다양한 형태의 몰래카메라가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보험사 직원이 교통사고 보험금을 더 챙기려던 나이롱환자의 정상적 생활을 몰래 찍은 사진의 위법수집 여부가 민사재판에서 논란이 된다. 해수욕장 입구에는 '몰카는 범죄'라는 경찰의 경고성 팻말이 붙어 있을 정도로 도촬이 널리 퍼져 있다. 여름철 해수욕장에 들른 흔적을 남기다가 경칠지 모른다. 몰카 성범죄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숙박업소에서의 '몰래 카메라 찾는 방법'까지 떠돈다고 한다. 사람들의 몰카에 대한 공포감은 크고 자연히 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제 망원렌즈, 소형 카메라, 도청기, 인터넷 등으로 타인의 사생활을 너무나 쉽게 엿볼 수 있다.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에 기존에 관행적으로 해왔던 사진 촬영의 윤리적·법적 문제를 되짚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상이 공개되더라도 이를 감수할 만한 것인지 그 입장을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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