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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비혼모 사회가 던지는 화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08 16:53

수정 2016.03.08 16:53

[차장칼럼] 비혼모 사회가 던지는 화두

"얘가 내 딸이야. 절친(best friend)이 애 아빠야."

"절친이 남편이라고요?"

"그냥 애 아빠. 결혼은 안했어."

"동거한단 말이죠?"

"같이 안사는데?"

"애는 있고, 애 아빠와 떨어져 살고, 그걸 뭐라고 하나요?"

"'특별한 용어 없어. 그런 사람 많은데?"

이 대화는 지난 2월 초 기자가 싱가포르에서 마주친 '잉그리드(Ingrid)'라는 칠레 여인과 나눈 것이다. 결혼은 안했지만 미혼모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아이를 갖고 결혼은 안하기로 서로 합의했단다. 같이 사는 것도 아니니 동거 커플도 아니다. 굳이 이름 짓자면 미혼모보다 비혼모(非婚母)가 알맞다.


비혼모이길 택한 잉그리드에겐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 이유는 비혼모로 살아도 아이를 키우는 데 큰 지장이 없다는 거다. 결혼을 안해도 각종 육아혜택을 받을 수 있고, 직장생활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이 사례는 과연 칠레의 잉그리드 뿐일까. 통계 자료를 찾아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선진국은 비혼모 비중이 수십년간 급격히 늘었다. OECD와 유로스탯(eurostat)에 따르면 지난 2012년 현재 결혼외 출산 비율은 프랑스와 스웨덴이 이미 55%를 넘어섰고, OECD 회원국 평균은 39%로 1970년 대비 5배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의 선진국은 결혼외 출산 비중이 10% 안팎에서 OECD 평균에 근접하거나 넘어서는 수준에 도달했다. 칠레의 결혼외 출산 비율은 70%에 이른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칠레의 여성 우대 정책은 다른 국가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한 살 이하의 아이가 아플 경우 최대 12주까지 휴가를 요구할 수 있고, 근로자 20명 이상 사업장은 2세 미만 자녀를 수유할 수 있는 독립공간 마련을 의무화하고 있다.

잉그리드의 사례와 OECD의 통계수치는 한국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다른 나라의 출산장려정책이다. 칠레의 출산 장려대책은 수치로만 보면 결과적으로 결혼제도를 거의 파괴했다고 봐야 한다. 연인이 아이를 키우다 헤어지거나 사망할 경우 여러 가지 법적 문제는 복잡하다. 다만 실리적인 측면에선 인구를 늘리고 구매력을 높여 내수 경제를 받쳐주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출산 장려 정책은 결혼을 전제로 하는 혜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까지야 당연한 얘기지만 이제 다양한 해법을 모색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싱글족이 넘쳐나고 생활패턴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어느 한쪽의 정책이 옳다는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구매력있는 소비자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ks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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