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갑질에 서러운 세입자
위임장 없이 대리인 계약, 타인 계좌에 월세 요구 등
비정상적인 절차로 인해 세입자 보호 못받아 피해
#. 회사 인근 전세 오피스텔로 이사하기 위해 가계약까지 마친 정모씨(28)는 집주인이 대리인 위임장을 써주지 않아 계약을 파기했다. 외국에 거주하면서 영주권을 갖고 있는 집주인은 모친을 통해 계약을 하면서 "때가 되면 영사관을 통해 위임장을 써주겠다"고 말했다. 막상 계약이 완료되려 하자 집주인은 사는 곳에서 영사관까지 수시간이나 걸린다며 위임장 없이 어머니와 계약해달라고 제안했다. 정씨는 계약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결국 가계약금을 돌려받고 교환한 계약서도 파기했다.
위임장 없이 대리인 계약, 타인 계좌에 월세 요구 등
비정상적인 절차로 인해 세입자 보호 못받아 피해
#. 대학생 신모씨(24·여)는 원룸 자취생활을 끝내고 본가로 돌아가려던 중 원룸 집주인과 청소비 문제로 마찰을 겪었다. 집주인은 신씨가 나간 뒤 새 세입자를 받기 위해 방을 치워야 한다며 청소비 명목으로 5만원을 요구했다. 당초 계약서에도 없는 내용이었지만 괜히 청소비를 주지 않았다가는 보증금 받기가 어렵다는 부동산중개업자 말에 신씨는 5만원을 주고 나왔다.
봄 이사철에 접어들면서 전세매물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일부 집주인의 '슈퍼 갑질'이 세입자를 울리고 있다. 대리인 계약 시 위임장 없이 진행하려 하거나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청소비 등 지불을 종용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세매물은 공급에 비해 수요자가 훨씬 많은 데 따른 것이다.
■계약·월세계좌 등 임의로 변경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사철을 맞아 집을 찾는 세입자가 늘고 있지만 집주인의 요구가 까다로워 세입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 집을 구하는 데 급급해 비정상적 절차로 입주하면 전세금을 보호받지 못하는 등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위임장 없이 계약을 한 뒤 집주인이 계약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 그만"이라며 "전세매물이 귀하다보니 집주인이 본인 편의만 봐달라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래 특성상 중개업자는 주요 고객인 집주인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큰 거래일 경우 세입자가 개인적으로 꼼꼼히 알아봐야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전월세지원센터 관계자는 "대리인 계약은 위임장과 인감 등 확인은 물론 집주인에게 별도로 전화를 걸어 계약이 맞는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 계약서상 명시된 임대인이 아니라 임대인의 친지 등 다른 사람에게 월세를 보내달라는 요구도 집주인들의 흔한 갑질로 꼽힌다. 임대인 이름으로 월세를 이체하지 않을 경우 자칫 그간 월세를 미납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지난해 말 신혼집을 차린 황모씨(31·여)는 "집주인이 자신의 아내 계좌로 월세를 보내달라고 해 계약서상 아내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화를 내더라"며 "집주인과 사이가 나빠지면 나갈 때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수리비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청소비 안 주면 보증금 못 준다"
원룸의 경우 집주인들이 계약서에도 없는 청소비를 요구하기도 한다. 통상 3만~5만원으로 비교적 소액이지만 세입자들은 기분이 언짢다. 무엇보다 안 내겠다고 버티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최대한 늦게 주려 하기도 한다. 신씨는 "대학생에게 5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보증금을 늦게 돌려받아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야 5만원을 주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줬다"고 전했다.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일종의 볼모로 삼고 세입자에게 청소비를 요구한다는 상담이 자주 접수된다"며 "세입자들도 3만~5만원쯤이야 일단 지불하고 스트레스 덜 받자고 생각하는 일이 많은데 집주인들이 이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청소비는 세입자와 집주인이 합의하에 정하는 외에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다"고 덧붙였다.
tinap@fnnews.com 박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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