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망했다, 돈 빌려 달라, 가족이 위독하다
이별 노하우 담긴 신조어 인터넷 중심으로 확산
#. 대학생 윤모씨(25·여)는 2년간 사귄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가 욕설 등 폭언을 들었다. 감정이 격앙된 남자친구는 윤씨를 밀치기까지 했다. 이후 주기적으로 카카오톡으로 욕설 등을 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메신저 차단도 해봤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는 캠퍼스에서 "왜 차단했느냐"며 따지고 위협했다. 윤씨는 남자친구와 관계를 끝내고 싶지만 막무가내로 위협해 두려움에 떨며 학교에 다닌다.
이별 노하우 담긴 신조어 인터넷 중심으로 확산
최근 헤어진 여자친구 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데이트폭력 뿐만 아니라 인질극 등 극단적인 행위로 치닫는 일이 이어지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안전이별'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이별을 요구하는 애인에게 폭언을 하거나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신체적 약자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안전이별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유를 내세워 상대방의 관심이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거짓말을 해도 안전이별 이후 협박 및 폭행 등 후폭풍을 방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돈 문제, 집안 핑계대기… 먼저 떨어지도록
3월 31일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연인 간 폭력 범죄자의 평균 재범률은 76.5%에 달했다. 2번 이상 데이트폭력을 당한 것이다. 윤씨처럼 말을 잘못 꺼내면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상대방의 무관심을 유도하거나 성격차이 등이 아닌 외부적인 요인으로 헤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게 대표적인 안전이별 방법이다.
윤씨와 비슷한 일을 겪은 취업준비생 정모씨(27·여)는 남자친구와 겨우 헤어지고 난 후 지인들로부터 '안전이별 했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정씨는 "흔히 친구들 사이에서 안전이별이라면 상대방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거나 보증을 서달라고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며 "이럴 경우 상대편이 먼저 질색해 이후 과도한 집착이나 폭언으로 이어지는 데이트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모씨(30·여)는 "헤어지는 과정에서 자칫 말을 잘못 했다간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 '부모님이 위독하다'는 외부적인 요인을 핑계로 이별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알려져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여성잡지 등에는 안전이별 방법으로 '돈 문제 만들어내기' '집안 핑계대기'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부 남성들도 안전이별 방법을 찾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 황모씨(31)는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거부하면서 본인의 손목에 자해를 하더라"며 "겨우 설득해 관계를 끝낼 수 있었지만 이후 헤어질 때 적당한 거짓말을 섞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상대방이 큰소리로 호통을 친다 △온종일 많은 양의 전화와 문자를 한다 △통화내역이나 문자 등 휴대폰을 체크한다 △헤어지면 죽어버리겠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등이 빈번하면 데이트폭력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일부 남성도 고심… "연인간 폭력, 적극 대처해야"
한편 이별 과정 등에서 발생한 연인간 문제를 개인적으로 치부하기보다 경찰에 적극 알려 보호받는 방법도 있다. 실제 경찰청은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한달간 '연인간 폭력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입건한 피의자가 49.1% 증가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연인간 폭력이나 범죄 사건의 동기는 한 쪽이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 때 가장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연인간 폭력 문제를 사적인 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카카오톡 메신저를 이용한 폭언이나 협박 문자 등을 경찰에 신고하면 해당 사안이 경미해도 구두경고, 또는 서면경고를 하고 형사입건 필요성이 있을 경우 바로 수사에 착수한다"고 덧붙였다.
tinap@fnnews.com 박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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