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이 품은 돌덩어리의 강인한 氣
하종현 화백(81)의 '접합(Conjunction)' 연작은 안료와 마포가 기름을 통해 하나가 되며 만들어낸 토속적인 재질감이 마치 흙벽을 연상시킨다.
한국 단색화의 주요 작가 중 한 명인 그의 작품은 캔버스 표면에 물감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뒷면에서 앞면으로 안료를 밀어내는 배압법(背壓法)에 의해 탄생되는데, 유럽 등 서구 화단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독창적 기법과 실험정신이 그의 작품을 이루는 가장 큰 특징이라는 평가다.
미술 비평가이자 파리1대학 교수인 필립 다장은 하종현의 작품에 담긴 황토색 계열의 색조나 흰색의 섬세함, 단색의 캔버스에서 안료를 걷어낸 흔적, 축적되고 퇴적된 안료가 만들어낸 두꺼운 물감층 등에서 모래사장의 황토색과 바다 거품 같은 색채를 발견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또 강한 물성을 드러내는 하종현의 단색조 회화를 두고 "난폭함과 금욕주의를 하나로 엮어 놓은 듯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한편 하종현은 1970년대부터 이우환과 함께 파리비엔날레에 출품하고, 이우환이 이끄는 한국 전위작가들의 일본 전시에 참여하며 시간과 공간, 물질과 물질, 물질과 허상을 통하게 하는 기(氣)를 감지해 왔다고 했다.
'접합 2002-49'는 이우환의 '관계항'이 강에서 굴러다니는 돌덩어리를 공장에서 만들어낸 철판들과 함께 놓아 상징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기'의 파장력을 화폭으로 옮겨낸 것이다. 우리가 수많은 사물을 일상에서 마주치지만 사물들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경우만이 그 사물과 진정 '만났다'고 할 수 있기에 말이다.
변지애 K옥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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