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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석탄공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16 17:13

수정 2016.05.16 17:13

석탄은 수풀이 땅에 묻힌 후 열과 압력을 받아 탄화돼 만들어진다. 고생대 석탄기에서 페름기까지 1억년 가까이 지속된 거대한 숲의 시대는 인류에게 석탄을 남겼다. 인류가 석탄을 처음 발견해 이용한 것은 3000년 전으로 전해진다. BC 315년 그리스의 과학자 테오프라스토스의 저서 중에 "암석 중에는 연소되는 것이 있어 금속을 녹이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는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유럽에서는 11~12세기부터 사용됐지만, 오늘날처럼 탄광에서 대대적으로 캐내게 된 것은 산업혁명을 거쳐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석탄은 한국의 산업화 시기 가장 중요한 연료로 취급됐다. 하지만 석유가 등장하고 1·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탄은 1980년대 후반까지 20여년간 석유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생존경쟁을 벌여왔다. 정부 정책에서 석탄이 우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석유가 우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석탄산업도 부흥과 침체를 함께했다. 1978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석탄산업은 최고의 부흥기를 맞게 된다. 비싸진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 1986년에 석탄 생산량이 2426만t을 기록했다. 석탄산업이 석유파동 덕택에 절정기를 기록한 후 쇠퇴하기 시작한다.

대한석탄공사는 1950년 일제가 자원을 빼앗다 남기고 간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됐다. 한동안 국가 연료수급정책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석공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던 시절 최고의 국영기업으로 각광을 받았다. 대통령과 상공부 장관이 수시로 석공 총재에게 석탄 증산을 독려했다. 그 시절 석공은 직원 수가 수만명에 달했다. 석공은 유명 공과대학 광산학과 졸업생과 일류대 경상계 졸업생에게 일등 직장으로 꼽히는 등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서울 서소문사옥의 석공 총재 비서실은 여당의 실세 의원과 지역구 출신 의원들로 붐볐다. 군 출신이나 국가유공자들의 특채가 많아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석공은 1990년대 이후 연탄산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재무구조가 점점 더 나빠졌다. 작년 말 기준으로 부채는 1조6000억원 가까이 쌓였고, 매년 1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고 있다.
최근 정부가 석공의 문을 닫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현재 에너지공기업 기능 조정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은 전혀 결정된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석공이 시대 흐름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 같다.

junglee@fnnews.com 이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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