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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기업윤리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19 17:04

수정 2016.05.19 17:04

[여의나루]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기업윤리

피해자들에겐 너무도 고통스럽던 5년이 지나서야 진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이 영유아이거나 그들의 엄마라는 사실이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식들을 키우려고 선택한 가습기 살균제가 되레 독이 되고 말았다.

우리 대다수는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사고는 2011년부터 일어나 피해자들이 끊임없이 기자회견, 시위, 토론회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책 마련을 촉구해 왔다. 그 많은 피해자를 두고서 어찌 된 영문인지 마땅한 역학조사나 피해 파악 한번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5년이란 기간 동안 방치하게 만든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최근 검찰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고서야 몇몇 기업들이 등 떠밀리듯이 사과를 했지만 아직도 주력업체 또는 제조사가 아니라고 하면서 뒤에 빠져서 사태 추이만을 관망하고 있는 업체나, 정부의 늑장 대응에 성난 민심이 들고 일어나니까 국회도 난리법석인 걸 보면 이게 온전한 사회이고 국가인가 싶다. 과연 그동안 진정으로 몰랐던 것들이었는지 그리고 법이나 규정이 미비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제발 뒷북이라도 제대로 쳐주었으면 한다.

언론에 보도된 사실만을 근거로 해도 만약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해당 기업이 인지하고도 이의 제조나 판매를 중단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살인죄에 가까운 아주 심각한 범죄행위일 게다. 또한 유해성 논란이 있었던 상황에서도 이를 눈감아주었다거나 진실 왜곡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 역시 똑같이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이윤 추구에 눈이 멀어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 우리 이웃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라면 말이다.

또한 5년여 동안 피해가 속출하는데도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국민의 생존과 안전보다 소중하고 급한 사정이 또 무엇이었는지 속 시원한 답을 듣고 싶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유감과 사과를 표명하고 적당히 피해보상을 해서 마무리하려는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는 기업책임자 답변에 화가 난다.

우리는 기업이 창의성을 바탕으로 보다 자유로운 여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해 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업에도 좋지만 우리 국민, 우리 경제에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 정말 우리 생각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피해의 원인을 다른 데로 돌리고 돈을 앞세워 연구결과를 조작하는 행태를 보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우리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는지도 의심이 든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최고가치로 여긴다 할지라도 이제 우리에게도 윤리의식이 높은 기업에만 설 자리를 만들어주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1982년 미국에서 발생한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은 진정 우리 곁에 있어야 할 기업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시카고에서 7명이나 되는 사람이 타이레놀을 먹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기업인 존슨앤드존슨은 스스로 신속하게 사건의 원인을 조사해 사망 원인이 타이레놀에 독극물을 누군가 넣었음을 알게 되자 즉시 현상금을 걸어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타이레놀을 전량 회수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대중매체를 통해 시판 중인 타이레놀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절대로 복용하지 말 것을 홍보하는 등 추가적인 사고를 막기 위해 막대한 기업피해를 감수했다. 그리고 사용자가 누군가가 뜯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포장방법을 바꾼 후에야 제품을 재출시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이런 기업이 사랑받는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과 잘못을 철저히 그리고 끝까지 밝히고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이번 사태의 핵심기업의 본사가 소재한 영국 내 언론에서 짤막한 단신으로 처리하듯이 절대로 우리에겐 단막 처리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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