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공감할 '룰' 실종.. 지자체에 더 큰 권한 줘야
전통적인 영호남 갈등은 저리 가라다. 영남끼리 붙은 한판 싸움에 해당 지역은 물론 전국이 들썩거렸다. 신공항 갈등은 기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났지만 신공항 백지화를 둘러싼 여진은 한동안 이어질 듯하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뒤 소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역 경계도 허물어졌다. 시장.지사.군수들이 바로 옆 동네를 헐뜯지 못해 난리다. 혐오 시설은 님비(NIMBY), 좋은 시설은 핌비(PIMBY) 증상이 갈수록 깊어진다. 신공항 백지화에서 보듯 중앙정부는 줏대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해법은 없을까.
지역 갈등은 일상다반사다. 세종시를 놓고 충청권과 서울.수도권이 대립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놓고는 충청권과 비충청권이 으르렁거렸다. 지난 2011년 과학벨트 거점지역으로 대전 대덕연구단지가 결정되자 탈락한 지역 단체장들은 단식농성에 삭발을 하고 혈서를 썼다.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공기업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할 때는 서로 달라고 떼를 썼다.
반면 작게는 화장장이나 소각장, 크게는 원전이나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지을 때는 적당한 땅을 찾지 못해 개고생이다. 중저준위 방폐장을 지을 때는 민란에 가까운 반발을 겪은 끝에 가까스로 인센티브를 주고 경북 경주에 건설했다.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고준위 방폐장은 과연 부지를 찾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지난 17일 첫 공청회에선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엉망이 됐다. 신규 원전 건설은 언감생심이다. 발전소를 지어도 송전탑 건설 반대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신공항 백지화는 갈등 조정에 실패한 또 다른 사례다.
근처에 장애인 시설만 들어서도 눈을 부라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장 또는 지역 주민들에게 님비.핌비 현상을 거론하며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보다는 특정시설을 유치할 경우 확실한 부담 또는 혜택이 따른다는 점을 공식처럼 적용하는 게 낫다. 예컨대 공항을 새로 지을 때는 반드시 예산을 중앙.지방정부가 절반씩 부담토록 하는 것이다. 반면 고준위 방폐장이나 원전을 유치하는 지역엔 듬뿍 선물을 안겨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다.
궁극적으론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자체에 화끈하게 넘겨야 한다. 중앙정부가 권한과 예산을 쥐고 흔드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지역 이기주의도 사라지지 않는다. 국책사업을 따내는 것이 횡재라는 기분이 들게 해선 안 된다. 지자체에 더 큰 재량권을 주되 상응하는 책임도 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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