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전략 맡으며 '시험대'
20세기 세계 경제사에서 고성장의 대표적인 나라였던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파고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국토의 절반 이상이 파괴된 6·25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온 국민의 일치단결로 눈부신 경제발전의 꽃을 피웠지만 선진국 문턱에서 주춤하고 있다. 과거 50년간 우리 경제를 고도성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추동력을 잃어가면서 근본적인 혁신의 기로에 섰다. 기업들도 '파괴적 혁신'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경영환경에 직면해 있다. 지난 1월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화두도 '제4차 산업혁명'이었다.
디지털과 융합에 기반한 유비쿼터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유전공학 등 새로운 산업들이 경제질서를 주도할 것이라는 데 세계의 리더들은 깊이 공감했다. 국내 10대 그룹도 하나같이 올해 경영화두는 '변화와 혁신'으로 정했다. 그리고 한국 경제의 미래와 새로운 경제질서를 이끌 차세대 재계 리더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이들은 혹독한 경영수업을 거쳐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창업주나 선대 회장과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미래 한국 경제를 대표할 차세대 재계 리더 7명의 면면을 조명해 봤다. <편집자 주>
두산의 새 먹거리로 떠오른 면세점 사업을 직접 챙기며 경영 시험대에 오른 박서원 두산 면세점 유통전략담당 전무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박 전무는 오너가 경영수업을 거치지 않고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로 유학을 떠나 사촌들과는 다른 행보로 움직인 것. 독특한 행보답게 그는 '밸류 비즈니스'라는 독특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박 전무는 지난해 한 강연에서 "밸류 비즈니스는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는 가치 공유 비즈니스"라며 자신의 경영철학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가운데 낙태율 최고라는 불명예를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바른생각'이라는 콘돔회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낙과를 이용해 잼을 만드는 '이런잼병'이라는 브랜드를 출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 또한 밸류 비즈니스의 일환이다.
박 전무는 업무를 스스로 챙기고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면세점 오픈을 앞두고 일주일간 파리 출장에 나서 현지 명품업체 사장들과 면담하고 유명 백화점을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박 전무는 회사를 이끌어 가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그의 인식은 과거 작은 회사를 직접 운영했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박 전무는 2005년 미국 뉴욕 SVA에 입학해 2006년 2학년 동기생 4명과 광고회사 '빅앤트인터내셔널(빅앤트)'을 차리고 대표를 맡았다. 반전 메시지를 담은 옥외광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로 세계 5대 국제광고제에서 15개 상을 휩쓸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박 전무는 이후 두산그룹 계열사인 광고대행사 오리콤의 크리에이티브 총괄로 자리를 옮겼다. 그간 독자행보를 하던 그가 두산 가문으로 입성한 것이다. 이후 박 전무는 경쟁사 인수합병(M&A)을 단행해 광고업계 '톱5 입성'을 이뤄냈고 매출과 영업이익도 크게 늘어 경영 능력을 평가 받았다.
오리콤 살리기에 주력하던 박 전무는 면세점 유통전략담당 전무(CSO)에 임명돼 두산의 신사업으로 떠오른 면세점 개장 준비를 진두지휘했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입찰부터 두타면세점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업계에서도 '광고쟁이'라는 이색적인 타이틀을 가진 박 전무의 행보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두타 면세점의 실적에 따라 4세 후계 경쟁에서 박 전무의 위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면세점 사업으로 박 전무가 경영능력의 시험대에 올랐다"며 "면세점 성공 여부에 따라 그룹 내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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