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재선에 나선 73세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가 자신의 고령에 대해 질문하자 "나이를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상대후보의 젊음과 경험 부족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라고 받아쳤다. 후보의 사소한 행동이나 태도가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1992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와의 토론 중 손목시계를 자주 보다가 비판을 받았다. 2000년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토론 중 자주 한숨을 내쉬어 거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우리나라에서 TV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7년 15대 대선부터다. 당시 김대중.이회창.이인제 후보의 3파전에서 달변이었던 김 후보는 세차례 토론에서 매번 1%포인트가량 지지율이 올랐다. 2012년 대선 TV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당신을 떨어뜨리려 나왔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수 표를 결집시켜 박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대선 1차 TV토론이 한국시간 27일 아침 열린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 간의 대결은 1억명이 지켜보는 '달 착륙 이래 최대 이벤트'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판세가 박빙인데다 두 후보의 캐릭터가 극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국정경험과 지식이 풍부하고 토론의 달인으로 통한다. 트럼프는 '리얼리티 쇼의 제왕'으로 불릴 만큼 방송토론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런가 하면 클린턴은 '거짓말쟁이' '미디어 기피자', 비호감에 병약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트럼프는 '막말 챔피언'에 무지와 과격의 이미지가 덧칠돼 있다. 때문에 누구든 TV토론에서 큰 실수라도 하면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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