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사태, 해운업계 원로에게 듣는다.. 이승현 전 한진해운 부사장
"해운은 국가생명줄.. 수출 주도 경제성장 기여"
"한진해운 없어지면 컨테이너 100만개 날아가"
"글로벌6위 부산항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
"한진해운 태평양 노선은 1위 머스크와 맞먹어"
"머스크가 가장 가져가고 싶은 선사가 한진해운"
"현대상선, 한진해운 영업망 인수도 쉽지 않아"
"중국 지점장이 경찰서로 피신해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데…."
"해운은 국가생명줄.. 수출 주도 경제성장 기여"
"한진해운 없어지면 컨테이너 100만개 날아가"
"글로벌6위 부산항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
"한진해운 태평양 노선은 1위 머스크와 맞먹어"
"머스크가 가장 가져가고 싶은 선사가 한진해운"
"현대상선, 한진해운 영업망 인수도 쉽지 않아"
근심스러운 눈동자가 스마트폰을 향했다. 이승현 전 한진해운 부사장이 내민 카카오톡 채팅 창에는 해운 후배들이 보내온 메시지가 가득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인한 물류대란 관련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었다."최악의 타이밍이었다. 하필 물동량이 피크일 때다. 미국 1년 총 소비의 50~60%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 나온다. 3.4분기가 컨테이너 운송의 최대 성수기인 건 이런 이유에서다. 수출업자는 이 시기 돈을 벌어야 하는데, 보낸 물건이 제때 도착하질 않으니 수출입업자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는 거다.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40여년 물류업에 몸담아온 이승현 전 부사장은 1971년 대한항공에 입사, 한진해운이 한때 글로벌 4위까지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항공 물류시스템을 해운에 접목시켜 빠른 속도로 해운업 선두권에 한진해운을 올렸다. 세계 해운 역사에서도 한진의 행보는 유례없었다. 과감한 투자, 장기적 안목으로 한진의 성장을 함께했던 해운업 원로는 한진해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곽인찬 파이낸셜뉴스 논설실장이 지난 9월 28일 서울 효창동 사옥에서 이승현 전 부사장을 만났다.
대담 = 곽인찬 논설실장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결정 이후 벌어진 물류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해운은 기간산업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국가 생명줄과 같다. 대한민국은 수출의존이 심한 나라 아닌가. 수출입 물량은 98%가 바닷길로 움직인다. 모두 배로 운송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북한에 막혀 사실상 섬나라와 같다. 그간 해운은 한국의 수출 주도 경제성장에 기여해왔다. 한진해운이 글로벌 4위 선사로 올라서면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졌다. 한진해운으로 인해 부산항이 커지기 전에는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가는 허브는 일본이었고 유럽행 허브는 홍콩이었다. 한국에는 작은 컨테이너선이 들어와 물건을 싣고 다시 일본과 홍콩에 내리면 큰 선박이 이를 다시 싣고 미국과 유럽으로 향했다. 그만큼 물류비가 추가되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입 물가가 오르니 덩달아 국내 물가도 오르게 된다. 물류는 그만큼 강력하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국가 핏줄을 잘라놨으니…. 정부는 해운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해운은 절대로 개인의 기업이 아니다.
―이번 사태로 부산도 타격이 크지 않나.
▲한진해운이 1년에 컨테이너 500만개를 실어 나른다. 부산을 아시아 물류 허브로 만들어 부산항을 중심으로 컨테이너를 모았다. 다른 나라에서 옮겨 와 다시 실어서 보내는 컨테이너도 최소 100만개가 넘는다. 한진해운 없어지면 100만개는 그냥 날아가는 거다. 부산항은 현재 글로벌 6위다. 한진해운이 무너지면 금방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곧 없어질 거다. 거제와 통영이 조선업 불황으로 어려운데 부산도 무너질 수 있다. 생각해보자. 항만에 크레인, 창고, 열차, 트럭 등 부두연관 종사자가 엄청나게 많다. 또한 배가 하나 더 들어오면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급유 탱커까지 엄청난 종사자가 매달리고 그 가족들도 먹고산다. 한진해운 직원만이 전부가 아니다.
―한진해운 사태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었다고 보나.
▲외환위기 때 김대중정부가 해운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기업 부채비율을 200%로 맞추게 했다. 해운은 대단위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한 척만 배를 지어도 부채비율이 몇 백퍼센트씩 올라가는데 한진해운이 배를 지을 수 있었겠나. 그리고 정부가 요구한 200% 부채비율을 맞추기 위해 선박을 처분했으니 고액이라도 용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정부는 수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수출입은행을 통해 덴마크 선사 머스크에 1만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에 대한 파이낸싱을 해줬다. 당시 가장 큰 선박은 1만2000TEU였다. 20척 모두 대우조선해양에서 지었다. 한 척에 약 2억달러로 한번에 40억달러 수출 성과를 올린 거다. 우리나라 정부가 다른 나라 선사에는 앞장서서 일감을 몰아주고 하면서 왜 한국 선사는 등한시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원가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싸움이 되지 않았던 거다.
―전직 회장이었던 최은영 유수홀딩스 대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한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이 돌아가시면서 셋째 조수호 전 회장이 한진해운을 맡았다. 조수호 회장은 중학교 때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MBA를 마친 후 한진해운에 합류했다. 어려서부터 미국에 나가있다 보니 한국에 인연이 없었다. MBA에서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 이 사람들을 조수호 회장이 한진해운으로 데려와 비서실, 총무실, 기획실 등 요직에 배치했다. 이들은 대부분 씨티뱅크 출신이었다. 당시 해운업 호황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씨티뱅크 출신들을 데리고 왔다는 건 그쪽에 재테크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고 안타깝게 일찍 돌아가셨다. 최은영 회장은 사실상 자기 길을 갔다. 한진해운홀딩스를 만들었고, 여의도 사옥은 지금도 최 회장 명의로 돼있다. 최 회장이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을 때 MBA 출신 사람들 이름이 잔뜩 나왔다. 씨티뱅크 출신들이 와서 한 일이 이런 재테크였던 것 같다.
―한진해운이 가진 경쟁력은 어떤 것이 있나.
▲전 세계 해운업계 1등이라고 하는 머스크가 유럽노선의 20%를 점유하고 있지만, 태평양 노선에서는 한진해운이 머스크와 맞먹는다. 태평양 노선에선 작년 전반기까지 흑자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빠졌는데 그렇다고 회사 청산이 말이 되나. 한진해운이 태평양에선 세계 최고 수준 물류시스템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놨다. 또 컨테이너 운송 모든 비용은 터미널에서 발생하는데, 한진이 전 세계 터미널 곳곳에 투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부산, 도쿄, 대만, 중국 상하이, 미국 시애틀, LA에 자체 터미널 물류 시스템이 있다. LA롱비치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터미널이다. 심지어 이곳에는 한진해운 자체 열차가 있다. 하루에 4번씩 시카코, 뉴욕, 휴스턴을 오간다.
―한진해운 초창기 항공업 노하우를 해운업에 접목시켜 독보적인 시스템을 만드신 걸로 안다.
▲LA에서 한국까지 배를 타고 오려면 2주 정도 걸린다. 비행기는 10시간이면 된다. 해운의 하루가 항공의 1시간이다. 그만큼 해운업무도 굼떴다. 배가 들어오면 그때부터 통제하고 통관절차가 진행됐다. 1980년대 통신은 느리고 비쌌다.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항공은 전 세계 통신망이 따로 있었다. 모든 용어들도 잘 정리돼 있었다. 그래서 대한항공에서 한진해운으로 적을 옮기면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이 항공통신망 도입이다. IBM과 함께 슈퍼컴퓨터를 제일 먼저 들여와 세계 최초 해운물류 전산시스템을 만들었다. 미국, 유럽, 서남아시아, 싱가포르, 중동, 한국에 IBM서버 6개를 만들어놓고 전 세계 네트워크를 온라인 '리얼 타임(실시간)'으로 만들었다. 리얼 타임이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해운물류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니, 다른 선사는 선박 출항 여부를 하루 지나서 혹은 배가 들어와야 아는데 우리는 배가 출발할 때 화주에게 바로 통보가 갔다. 더 나아가 삼성, 미국 월마트 등 대형 화주들을 전산물류시스템에 집어넣었다. 화주들은 본인들의 짐이 어디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 가능했다. 또 화주들의 연간 원자재 오더와 스케줄을 받아서 우리가 체크해서 다 관리해줬다. 자재부, 재고관리부, 운송부 등 부서를 다 없애도 되게끔 만들었다. 기업의 물류 비용과 인건비를 엄청나게 줄인 것이다. 완전 일관물류 서비스다. 이렇게 되니 머스크 등 세계 1.2등 회사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이름도 없었던 한진해운이 10년 만에 글로벌 4위가 된 배경이다.
―이런 한진해운이 사라지면 웃는 쪽은 글로벌 선사들이다. 향후 해운시장 전망은 어떻게 보나.
▲자본주의 자유경쟁시장에는 반드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후 항상 그래왔다. 골이 깊으면 산꼭대기도 높다. 불황이 오래될수록 회복 이후 호황은 그만큼 길어진다. 해운은 3년 호황기에 긁어모은 돈으로 7년 불황을 버텨왔다. 사이클이 길어진 것이다. 벌 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번다. 한진해운이 1년에 500만 컨테이너 실어 나르는데 성수기에는 운임 1000달러는 우습게 올라간다. 500만개 중 100만개만 1000달러 더 받으면 그냥 조단위로 올라간다. 내가 돈만 있으면 지금 해운에 투자하겠다.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알짜노선과 영업망을 현대상선에 주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은데, 어떻게 보나.
▲영업망이라고 하는 게 민간 기업 간 계약인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몇십년 동안 나도 주기적으로 거래처를 찾아갔었고, 그쪽도 한국 방문하면서 매년 얼굴을 맞대가며 서로가 만든 네트워크가 영업망이다. 내가 있을 때 만든 네트워크만 90개국, 100개 영업장이었다. 짧게는 20년, 오래된 것은 대한해운공사 때부터 50년, 60년이나 됐다.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사우디 이런 곳에 몇십년 된 네트워크들이 있다. 해외영업장은 한진해운을 대표하는 대행업체로 각종 물류비와 부두 핸들링비 등을 먼저 대납하고 한진해운이 한달 뒤에 정산해주는 시스템이다. 근데 느닷없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니까 50년, 60년 신뢰를 쌓아온 현지 네트워크는 다 파산상태다. 한진해운이 내야 할 항만 하역비와 창고료, 기차운송비를 그쪽에서 다 뒤집어 썼다. 한류는 무슨 한류인가. 한진해운을 욕할 것 같나. 한국 정부를 욕한다. 이제는 한국을 원수로 여기게 될 사람들이다. 100% 신뢰를 쌓으면서 몇십년 동안 만들어온 관계인데 이런 네트워크를 무슨 재주로 가져가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현대상선이 유일한 국적선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상선 정상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대상선이 세계 1위 머스크와 2위 MSC가 만든 얼라이언스 2M에 들어갔다는데 두 선사가 받아줄 이유는 사실 없다고 본다. 들어간다고 해도 전 세계 선복량의 30% 가까이 보유한 엄청난 두 선사가 있는데 현대상선이 거기서 뭘 할 수 있겠나. 2M 주력선대는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이다. 현대상선의 1만TEU급보다 원가가 30%, 40% 저렴하다. 컨테이너 공간을 공유하고 돈을 지불하는데 누가 원가를 보전해주나. 같이 경쟁하면 적자날 가능성이 크다. 현대상선 시작은 현대계열사의 자동차, 철강, 정유 등을 운반하기 위한 벌크선 사업이었다. 때문에 컨테이너 사업 경쟁력이 높지 않다. 머스크가 현대상선을 받아들인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라고 본다. 현대상선을 미끼 삼아 한진해운을 가져가는 것이 목적 아닐까 싶다. 머스크가 가장 가져가고 싶은 선사가 한진해운이다.
―한진해운의 운명은 이제 법원에 달려 있다. 청산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 마지막으로 해법이 있다면.
▲우선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류대란부터 해결해야 한다. 돈을 직접 지불하지 않아도 정부에서 지불보증에 대한 내용을 각국 정부에 보내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만약 한진해운을 살린다면 머스크하고 싸울 수 있게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20척을 한국 조선소에 발주해 줘라. 한진해운이 20년 동안 책임지고 운영하면 살아날 수 있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이 돈을 한진해운에 넣었으면 당장 머스크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향후 해운산업의 큰 그림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까.
▲가장 중요한 건 글로벌 네트워크다. 몇십년간 쌓아온 네트워크가 무너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위해 빨리 복구를 마치고 정부든 어디든 인수를 해야 한다. 또 10년 또는 20년 이후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해운과 물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해양수산부 말고 해양물류부를 만들거나 청와대 직속 기구를 만들어 준비해야 한다.
정리= eco@fnnews.com 안태호 최진숙 기자
*이승현 전 한진해운 부사장 ■약력 △67세 △대구 △경남고·서울대 경영 △대한항공 영업본부 부장 △한진해운 부사장 △한진종합물류연구소 소장 △한진그룹 경영조정실 부실장 △거양해운 대표이사 △독일 DSR-SENATOR 사장 △동남아해운 사장 △한국도심공항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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