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대통령실

네이밍 법안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법내용 전달 안돼 vs. 법안 발의 기폭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12 17:56

수정 2016.10.12 22:17

네이밍법 만들때 기준 없이 가해·피해자 이름 혼용.. 더 큰 혼란 줄 수 있어
법 취지 살리기 위해선 발의 목적 재차 확인해야
네이밍 법안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법내용 전달 안돼 vs. 법안 발의 기폭제'
특정인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네이밍 법안은 법안 내용을 더욱 쉽게 알리고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어 각광받아 왔다. 하지만 상징성 부각에 밀려 구체적 법안 내용 전달이 안 돼 사회적 혼란 등 부작용도 낳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1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두고 약칭으로 이전에 언급했던 '김영란법' 대신 '청탁금지법'을 사용했다. 법안의 취지와 함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청탁금지법이란 표현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김영란법이란 표현에 익숙해진 일반인들이 청탁금지법으로 갈아타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밍 법안 봇물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매 국회에서 특정인을 겨냥한 각종 네이밍 법안이 발의됐다.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부정부패를 뿌리뽑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청탁금지법은 최초 법안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을 딴 별칭 '김영란법'으로 더 많이 불리며 더치페이(각자 내기) 문화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살인죄 공소시효(25년)를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명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지난 1999년 학원에 가던 김태완군(당시 6세)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으로부터 황산테러를 당해 숨지면서 만들어졌다.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일부 개정안)도 태완이법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의료사고로 숨진 신해철씨 유족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네이밍에 가려 법안 내용 전달력↓

네이밍 법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네이밍에만 치중하다보면 정작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단기적 관점에서는 법안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법안 이름만 기억될 뿐 구체적인 법 내용을 몰라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청탁금지법도 부정부패 비리를 척결한다는 게 법안의 취지지만 '김영란법' '영란이법' 등과 같은 네이밍에 무게가 더 실리다 보니 일반인들이 부정청탁이라든가 금품수수 등 법안의 구체적 특징과 목적을 알 수 없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특정인 이름이 붙은 법안이 자칫 정쟁 대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발의한 '우병우 방지법'과 '정세균 방지법'도 여기에 해당된다.

더민주가 지난 8월 발표한 당 차원 세법 개정안 중 하나인 '우병우 방지법'(법인세법 개정안)은 부동산 임대 자산소득 절감 목적으로 법인을 편법으로 운영하는 곳에 추가 과세를 해 이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의 이름을 딴 법안이란 이유로 새누리당의 거부감을 샀다. 새누리당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의결된 뒤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 확보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현 국회의장인 정세균 의장의 이름을 따기도 해 여야 정쟁대상으로 전락했다.

더구나 특정인의 이름을 사용할 때 공통된 기준 없이 사건 가해자나 피해자의 이름을 혼용하다보니 오히려 법안 내용을 알리는 데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가령 '전두환법'이나 '유병언법'은 처벌 대상자 이름을 땄다면 '신해철법'이나 '최진실법' 등은 사건 피해자의 이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범현 변호사는 "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원래 법명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며 "과도한 네이밍은 법의 취지보다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기존 법안 목적이 흐려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네이밍으로 생소한 법안 파급력↑

반면 다소 생소한 내용이라도 법안을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네이밍 법안에 대한 긍정적 시각도 많다. 법안과 사건 관계자가 긴밀히 연관돼 있다보니 해당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법안에 대한 호응이 높은 만큼 오히려 의원들의 법안 발의를 독려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법무법인 세움 이병일 변호사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고, 법의 내용이나 취지를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많다"며 "네이밍 법안에 반응이 좋으면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법안을 발의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가상준 교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처럼 법안 이름이 길어 모두가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네이밍을 붙인 만큼 특정인의 이름을 딴 게 법안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상징적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네이밍 법안의 내용이나 발의 목적 등은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름에만 집중하게 되면 법안 내용을 잘못 이해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경건 교수는 "사람 이름을 법에 붙여서 사용하는 것은 대중적 파급력을 갖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원안과 달라진 부분이 있는 법들은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 조창원 팀장 윤지영 한영준 장민권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