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회 제4차 산업혁명포럼](3) AI시대엔 ‘로봇판사’가 판결할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18 17:42

수정 2016.10.18 17:44

대법원 국제법률심포지엄 슈밥 등 세계 석학들 참석
#. 2030년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 횡령 혐의를 받고있는 A씨는 불구속 기소된 지 하루 만에 첫 공판에 출석했다. 공판에 앞서 인공지능(AI) 판사는 미리 검찰과 피고인 측 주장을 파일로 넘겨받았다. AI 판사는 증인 2명의 신문이 끝난 지 5분 만에 수사기록과 재판내용을 스캔, 유사판례 등을 검색해 즉시 유죄로 결론짓고 검찰의 구형절차나 별도의 선고기일 지정 없이 A씨에게 법정구속을 명령했다. 이날 선고까지 내려지는 데 소요된 총 재판시간은 1시간의 증인신문 시간을 제외하면 10분에 불과했다.

머지않아 우리가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 법정의 모습이다.
올 3월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의 대결로 촉발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산업계를 넘어 법조계에서도 관심사다. 이를 반영하듯 대법원은 18일 '제4차 산업혁명'의 저자인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을 비롯해 국내외 미래학자들과 법조인들을 초청해 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사법부의 미래를 논의하는 '2016 국제법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AI 등장, 법조인 완전 대체 대신 짐 덜어줄 것"

이날 기조연설을 한 슈밥 회장은 "4차 혁명의 많은 이슈가 법적 이슈와 관련이 있다"며 "4차 혁명으로 돌출되는 기회를 포착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면서도 동시에 일반인들의 삶도 지켜줘야 한다"며 인공지능의 발달로 바뀔 사회상을 주목했다.

이어진 세션에서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인공지능이 법률가를 완전하게 대체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신 법률가들이 소송의 본안 쟁점에 집중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의 3차 산업혁명 시대(컴퓨터.인터넷) 이후 나올 AI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으로 법률가들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생겼다는 것이다.

'알레고리 로(Allegory Law)'의 창업자 알마 아사이 변호사는 "과거에는 소송 건이 작은 서류 가방에 다 들어갔지만 현재는 가방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며 "인공지능 발달의 중요한 목표는 몇십년 전에 변호사들이 했던 본연의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알레고리로는 최근 미국 법조인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얻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 소송관리 프로그램이다. 소송이 복잡해지면서 변호사의 짐을 더는 것이 이 서비스의 궁극적인 목표다.

진호 베르돈스코트 헤이그연구소 사법기술 설계국장도 "인공지능이 모든 법률시장을 대체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베르돈스코트 국장은 "판사들이 사법적인 판단을 하는 데 단순히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한국의 가정법원처럼 단순히 판결을 넘어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법분야 내에서 많은 부분이 기술로 대체되고 있지만 법관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베르돈스코트 국장은 1년 전 세계 최초로 이혼, 건물임대차 같은 관계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레크트바이저'를 개발했다. 그는 "해당 플랫폼을 통해 기술로 사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통을 기술에 접목했다"고 전했다.

■"AI 역할 데이터 축적.분석에 머물 것"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렉스 마키나'의 설립자 조슈아 워커 박사 역시 "인공지능은 인간의 편리를 위한 수단일 뿐 인간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렉스 마키나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특정 소송의 판결 결과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법률정보 서비스 업체다.

그는 "같은 판사라도 같은 사안에서 다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 만큼 인공지능이 내리는 결정이 인간의 결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인공지능의 역할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 인간이 더 나은 최종적인 예측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법률가가 분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내려진 여러 결론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인공지능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내 법조계도 인공지능이 사법부에 도입되더라도 인력을 전면적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AI가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창의력을 발휘할 정도가 돼도 변화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해해 법적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현재 기준에서 미래를 예측해 본다면 AI 도입은 법관의 심리를 돕기 위해 판례분석 업무를 하는 재판연구관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사회변화에 발맞춰 기존 법이 개정되고 기존 판례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AI가 사법의 결론을 담당하기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 판사의 업무를 상당부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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