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모(남·32)씨는 인천에서 부모님과 산다. 서울까지 왕복 출퇴근시간이 4시간이나 걸리지만 독립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따로 살 집을 구하기가 막막할 뿐만 아니라 먹고 자는 등 의식주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생활비를 보태드린다"며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많지만 독립을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거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만 자라서는 제 뜻대로 행동하려 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것도 옛말인 듯 싶다. 성인이 되도 부모의 품안을 자의든 타의든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부모에게 의존하고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을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최근엔 결혼 후에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新캥거루족'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 2030세대 10명 중 6명 "나는 캥거루족이다"
잡코리아는 성인남녀 1061명을 대상으로 캥거루족 체감 정도를 조사했다. '스스로를 캥거루족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56.1%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 결과 37.5%가 스스로를 캥거루족이라고 답한 것에 비해 18.6% 늘어난 수치다.
'주거비용이나 용돈 등 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62%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경제적인 측면이 응답자 스스로가 캥거루족이라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캥거루족이라 답한 응답자 중 79.3%는 '못하는 것', 20.7%는 '안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독립을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이라 답한 응답자 중 절반은 집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 부모세대 노후 위협·세대 간 갈등으로 강력범죄도 발생
미혼 자녀와 함께 사는 A(여·58)씨는 아침마다 전쟁이다. 아들이 출근시간이 다 돼도 일어나지 않고 잠투정까지 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 다 알아서 할 줄 알았죠. 그런데 다 커서도 어릴 적과 다를 게 없으니 한숨이 절로 나오죠” 그는 대학까지 보내면 편해질까 싶었는데 직장 들어가고 나니 2차전이 시작됐다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가족 변화에 따른 결혼출산행태 변화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세대 가구 중 25세 이상 미혼자녀가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은 1985년 9.1%에서 2010년 26.4%로 약 3배 증가했다. 또 부모와 동거하는 기혼자녀 부부는 최근 5년새 4배 늘었다.
캥거루족이 급증하면서 부모 세대의 삶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빠듯한 살림에 넉넉하지 않은 은퇴자금까지 자식들 부양하는데 쓰느라 노후 대책을 세울 여력도 없다. 관절질환 등 건강까지 나빠지는 악순환도 반복되고 있다.
2세대 3세대가 같이 살면서 세대 간 갈등으로 강력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 70대 남성은 20여 년간 직업도 없이 자신에게 돈을 타 쓰며 생활하는 아들 때문에 노숙까지 하게 되자 참다못해 흉기로 찔렀다. 50대 남성은 “왜 용돈을 안 주나”며 말다툼을 벌이다 80대 노모를 살해 했고, 취업문제로 어머니와 싸우다가 목 졸라 살해한 30대 아들도 있었다.
■ 청년취업·주거 안정·육아 공보육 시스템 갖춰야
캥거루족 양산은 사회 구조적인 탓도 크다. 많은 돈을 들여 대학까지 교육을 받아도 ‘괜찮은 일자리’ 등 전반적인 취업시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올 3분기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청년 실업률은 9월 기준 9.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은 넘쳐나는데 노동시장이 위축돼 청년들이 방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거 안정화와 육아 공보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기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신캥거루족의 두 얼굴: 우려와 기대’ 보고서를 보면 신캥거루족 가구를 위한 공동 육아 시스템을 강조했다. 또한, 세대 통합형 주택을 늘리고 아동 노인 시설이 연계된 복지시설 확산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퇴보적인 가족 관계를 만들고 캥커루족이 급증하는 것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안된다. 이는 국가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캥거루가 권투하는 장면 혹시 본 적 있나? 자신감 있게 원투 펀치를 날리는 캥거루를 보면 무언가 투지가 생기지 않던가? '자립심' 상실한 캥거루도 할 수 있다. '독립심' 되찾는 캥거루가 되길 기대한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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