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투수가 되는 자질은 스피드에만 있지 않아
빠른공 집착 자충수 될수도
빠른공 집착 자충수 될수도
1989년 10월 18일 대학야구 추계리그 결승전. '방패' 한양대와 '창' 인하대가 맞붙었다. 한양대는 정민태(한화 코치), 구대성(호주 프로팀 투수 겸 코치) 투톱을 보유했다. 당대 아마 최강 투수들이었다. 인하대는 4번 타자 김기태(KIA 감독)를 앞세운 두터운 화력을 자랑했다.
한양대 김보연 감독은 정민태를 선발로 내세웠다. 1회 김기태에게 3점 홈런을 얻어맞았다. 초반 0-4로 일찌감치 승부가 마감되는 듯 보였다. 결국 구대성의 구원 호투에 힘입은 한양대가 9-5로 역전승했다.
선발 정민태, 구원 구대성은 그해 한양대의 '리셀 웨폰(Lethal Weapon.치명적 무기)'이었다. 1986년부터 3년 내리 무관에 그친 한양대는 1989년 3관왕에 올랐다. 한양대의 '리셀 웨폰'은 선발 구대성, 구원 정민태 체제로도 제대로 작동했을까? 아니, 영 신통치 않았다. 김보연 당시 감독으로부터 그 이유를 들어보았다.
"(정)민태는 (구)대성의 1년 선배다. 둘 다 아주 뛰어났다. 다만 민태의 의욕이 좀 과했다. 대성이보다 뒤(구원)에 나오면 더 잘 던지려고, 더 빠른 공을 던지려고 하다가 그르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 반대는 문제가 적었다."
구원 투수는 앞에 나온 투수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려 한다. 그래야 통할 것 같아서다. 야구는 기록 경기가 아니다. 150㎞ 투수가 140㎞ 투수에게 반드시 이기진 않는다. 130m를 날아간 홈런이나 100m 비거리의 홈런이나 홈런이긴 마찬가지다.
오타니 쇼헤이(22.니혼햄 파이터스.사진)가 28일 99% 만장일치로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오타니는 이른바 '이도류(二刀流)' 선수로 유명하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고 있어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칼이 두 개다.
오타니는 올 시즌 투수로 10승4패 평균자책점 1.86을 기록했다. 타자로는 22홈런과 67타점을 올렸다. 타율은 3할2푼2리. 투타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성적이다. 요즘 야구에서 보기 드문 쌍칼잡이다.
오타니는 최고 시속 165㎞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다. 일본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볼을 던진다. 그런데도 최근 인터뷰서 "170㎞에 도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최고의 빠른 공 투수가 되고 싶어 한다.
세계최고 기록은 2011년 아롤디스 채프먼(당시 신시내티 레즈)이 던진 107마일(172㎞). 오타니는 "채프먼의 기록은 넘보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구속도 더 빨라질 것이다"라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시속 170㎞의 속구를 던지면 세계 최고 투수가 될 수 있을까? 기자의 대답은 '아니다(Never)'다. 다시 말하지만 야구는 기록 경기가 아니다. 170㎞를 던진다고 '최고'가 되진 못한다. 170㎞는 결코 최고 투수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직구 스피드는 구대성보다 정민태가 더 빨랐다. 대신 구대성은 정민태보다 더 능글능글했다. 타자를 갖고 놀 줄 알았다. 투수의 능력은 스피드로만 가름되지 않는다. 무리하게 스피드를 늘리면 부상의 위험도 따른다. '170㎞ 도전'은 오타니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
texan50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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