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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대통령 퇴진 로드맵, 국회가 만들어보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29 17:21

수정 2016.11.29 17:21

청와대 제의 다 걷어차면 질서있는 국정 수습 난망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정국 수습방안을 밝혔다.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다만 "국정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말씀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며 정치권에 공을 넘겼다. 이로써 정국은 '수습이냐, 파국이냐'의 분기점을 맞았다. 하지만 야권은 "조건 없는 하야가 민심"이라며 탄핵을 본격화할 태세라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정국'이 예상된다.

이로 인한 국정의 장기표류를 막으려면 국회가 박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한 로드맵에 합의해야 한다. 퇴진 압박에 시달리는 박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하야가 실제 상황이 된 이후 정국 안정을 논의하자는 목소리는 정치권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탄핵만 부르짖고 있을 뿐이다. 이러다간 대한민국호(號)가 선장 잃은 표류선처럼 나침반도 없이 장기간 망망대해를 떠돌 판이다.

이런 비상시국에 여당인 새누리당도 패닉 상태다. 그러잖아도 이정현 대표 거취를 놓고 내홍을 벌이느라 현안인 국정교과서 문제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었다. 대통령 퇴진과 탄핵절차를 놓고도 여전히 친박과 비박이 딴소리다. 설상가상으로 야당마저 질서 있는 수습은커녕 대권 게임에 골몰하는 인상이다. 정권이 눈앞으로 굴러왔다고 여긴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다른 대권 주자들의 개헌 주장에 "꿈 깨라"고 쐐기를 박는 등 파열음만 요란하다. 이런 식이라면 정국불안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최순실 정국'이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지금 국내적으로 난제가 쌓이고 있다.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를 비롯해 부동산 과열 대책, 대우조선 등 한계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 등 분초를 다투는 현안이 폭주하면서다. 국제정세도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고 있다. 북핵 제재와 통상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파고가 한반도로 밀려올 참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28일자에서 "지도자가 부재한 한국이 큰 혼란에 빠졌다"고 대서특필했다. 경제성장률 둔화, 안보위협 증대 등 결정이 필요한 시기임을 강조하면서다. 오죽했으면 외국 언론이 남의 나라의 위기에 경보음을 냈겠나. 더군다나 이제 박 대통령이 조건부이지만 퇴진 용의를 표명함에 따라 사실상 국정 컨트롤타워가 마비된 상황이다. 정치권이 당략을 떠나 국정 혼돈을 수습할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국가의 내일을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정략보다 국익을 앞세우란 함의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정치권이 작금의 난국을 부른 한 요인인 대통령제의 폐해를 교정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하고 자연스레 박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합의를 못할 이유도 없다.
청와대든, 여야 정치권이든 정권 유지나 쟁취 같은 소승적 목표보다는 국정공백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대의를 최우선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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