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간소화돼 '물면허'라 불리며 지나치게 쉽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운전면허시험이 5년 만에 다시 어려워졌습니다.
지난 12월 22일 새로운 운전면허시험제도 시행에 응시생의 탈락이 줄을 잇자 새로운 별명이 붙었는데요. 바로 '불면허'입니다. 실제 분석해보니 합격률이 상당이 낮아졌습니다.
경찰청은 운전면허 시험이 강화 된 일로부터 일주일 동안 각 시험과정 합격률을 분석한 결과 장내기능시험 합격률이 30%에 그쳤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2015년 같은 기간 합격률 92.8%의 1/3 수준입니다.
시험 응시자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단연 'T자 코스(직각주차)'였습니다. 장내기능의 주요 감점 요인을 보면 T자 코스에서 감점을 받은 응시자가 30%로 가장 많았고 기기조작 26%, 기어변속 11%, 과속 9%, 경사로 3% 등의 순이었습니다.
'T자 코스'에서 고배를 마신 탈락자들에겐 '불면허'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네티즌은 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T자 부활했다고 떨어진다는 게 기가 찬다", "불면허는 무슨.. 이게 정상인거고 이전 시험이 말도 안 되게 쉬웠던 거다"며 강화된 운전면허시험도 운전능력을 검증하는데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 '논란의 시작' 운전면허 간소화
정부는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면허시험 간소화 정책을 내놨습니다. 면허 취득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여 국민의 부담을 덜겠다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당시 도로교통공단은 "장내기능시험이 어렵기 때문에 대다수는 교육과 검정을 함께 실시하는 '운전전문학원'을 이용하게 되며, 시험에 통과할 수 있는 '공식'을 집중적으로 교육시켜 대부분은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합격률 91%). 전문학원을 이용해 운전면허를 따는데 든 시간은 최소 9일, 비용은 평균 76만 원 정도로 국민에게 시간적·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합니다"며 간소화 배경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면허취소 후 재취득하는 운전경력자도 통과하기 어렵고, 공식을 외우지 않고서는 합격하기 힘든 장내기능시험이나, 애써 외운 공식은 실제 운전할 때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도로주행을 위한 운전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장내기능시험은 oecd 국가 중 우리와 일본에만 있는 제도로, 미국·영국에서는 학과시험이나 적성검사에 합격하면 연습면허를 받아 도로에서 운전연습을 하고 시험도 볼 수 있으며, 자동차는 도로에서 운행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운전연습도 도로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습니다.
이에 운전면허 장내시험에서 곡선과 굴절 코스, 평행주차 등이 사라졌습니다. 교육 기간은 60시간에서 13시간, 평가항목도 15개에서 2개로 대폭 줄었습니다. 50m 직선도로를 주행하면서 운전장치 조작, 차로를 준수하고 돌발상황에 급정지하면 끝나는 간단한 시험이 됐습니다.
면허 취득이 쉬워지자 초보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증가했습니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가 2009∼2015년 발생한 현대해상의 사고 데이터베이스(317만4천92건)에서 경력 1년 미만인 초보운전자와 7년 이상인 운전자의 사고율을 비교한 결과, 면허시험 간소화 이전에는 초보운전자의 사고율이 1.7배 높았으나, 2015년에는 2.1배까지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 운전면허시험이 쉽다고 소문이 나 중국 국적의 면허취득자가 늘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中당국이 한국에서 취득한 면허는 인정하지 않는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정부에서 강조한 면허 취득 비용 절감부분도 확증하기가 어렵습니다. 간소화로 면허 취득 비용은 줄었으나 바로 운전대를 잡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도로 연수를 필수 코스처럼 인식해 면허를 따고도 추가적으로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 다시 강화 된 운전면허 정말 '불면허'?
논란이 계속되자 경찰청은 기능 시험을 강화하기로 발표했고 지난해 12월 22일부로 개선된 운전면허시험을 시행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되레 간소화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개선된 운전면허 시험은 학과시험의 경우 문제은행 문항 수가 730개에서 1000개로 확대하고 40문항을 출제합니다. 장내기능시험 평가항목 2개에서 7개로 늘어났습니다. ‘T자 코스’와 경사로가 부활하고 좌·우회전, 신호교차로, 가속 코스가 추가됐습니다. 전체 주행거리도 50m에서 300m 이상으로 길어졌습니다.
'T자 코스'는 방향전환보다는 주차 능력을 검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도로 폭이 과거보다 50cm 줄어든 3m입니다. 줄어든 폭 때문인지 재시험을 치룬 운전 경력자들고 우수수 떨어졌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습니다.
도로주행 시험 평가항목은 87개에서 57개로 줄어들었습니다. 의무교육 시간은 학과는 3시간으로 줄어드는 대신 장내기능은 4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도로주행 의무교육 시간은 기존 6시간과 같습니다. 총 13시간입니다.
간소화 이전 시험의 경우 전체 의무 교육시간이 총 60시간이었습니다. 1/3로 줄어든 셈입니다. 소요시간만 따질 경우 이틀이면 딸 수 있다는 얘기죠.
굴절코스, 곡선코스, 평행주차 등 까다롭던 평가항목도 사라졌습니다. 물론 운전전문학원의 공식 덕분에 과거에도 합격률(91%)이 높았지만 장내기능 의무교육시간은 20시간으로 현재 4시간의 5배나 많습니다. 응시생들이 운전 기술을 체득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이죠.
비록 운전면허 시험이 좋은 방향으로 개선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간소화 이전에 비하면 난이도가 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운전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운전면허 시험이 안전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선진국의 경우 운전면허 시험이 단순히 실력을 측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전운전을 할 수 있는 운전자를 배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합니다.
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하는데 호주 4년, 독일 2년, 프랑스는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대부분 초기에는 임시면허나 관찰면허를 2~3년 정도 유지하고, 운전하는게 안전하다 판단될 때 정식 면허를 발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면허 따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죠.
운전이 타인의 생명이 담보되는 만큼 운전면허 취득에 시간과 비용을 줄여 국민의 부담을 덜겠다는 생각보단 안전운전 역량 강화에 포인트를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yongyong@fnnews.com 용환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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