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권력이 돈 달라는데 버틸 기업 있습니까] 강요 못이겨 돈냈지만 "재단 출연, 불법인 줄 몰랐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17 17:39

수정 2017.01.17 17:39

(1) 崔게이트와 차떼기
2002년에도 정치권력 갑질
기업들, 범죄 인식은 달라.. "수사과정서 고려해야" 지적
'최순실 게이트'로 권력에 의한 기업 돈 챙기기가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과거 '한보사태'와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이 보여주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경유착 고리는 은밀한 방법으로 형성됐다. 각종 인허가권을 쥔 정권에 기댈 경우 더 많은 사업적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업에는 거절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의 측면도 컸던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피의자'로 입건된 이번 게이트를 과거 사례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재계를 넘어 법조계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규모가 비대해지고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는 글로벌 체제에서 자칫 '권력의 눈' 밖에 날 경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보복'이라는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뉴스는 정치권력의 '갑질' 실태와 이런 횡포에서 벗어나 자유시장경제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업들에 필요한 환경은 무엇인지를 5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권력이 돈 달라는데 버틸 기업 있습니까] 강요 못이겨 돈냈지만 "재단 출연, 불법인 줄 몰랐다"

[권력이 돈 달라는데 버틸 기업 있습니까] 강요 못이겨 돈냈지만 "재단 출연, 불법인 줄 몰랐다"


'최순실 게이트'는 지난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불거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대한 재계의 불법자금 제공 사건인 이른바 '차떼기 사건'의 복사판으로 불리고 있다. 권력자의 요구에 응한 재계 총수들이 잇따라 검찰과 특검에 줄소환되는 모습이 당시 사건을 연상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건은 권력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기업들이 범죄로 인식했는지 여부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만큼 수사과정에서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권력의 강한 요구 거절 못한 '차떼기 사건'

차떼기 사건은 2003년 서울지검이 SK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한 회계장부에서 2002년 대선 무렵 거액의 회삿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한 데서 비롯됐다. 검찰은 SK가 여야 후보 캠프에 거액의 불법자금을 제공하고 선거 후에는 당선자 측에 '축하금' 명목의 돈까지 건넨 사실을 파악했다. 수사는 SK를 넘어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다른 대기업으로 확대됐다.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김동진 현대차그룹 부회장, 강유식 LG그룹 부회장, 손길승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이 연일 검찰에 출석해 수사를 받았다. 수사 결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캠프는 2.5t 트럭에 담긴 현금을 트럭째 넘겨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검찰은 9개월간 수사를 통해 한나라당 823억원,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 캠프 120억원 등 943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밝혀내 정치인 30여명과 기업인 20여명을 기소했다.

차떼기 사건은 현재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 특검 수사를 받고 있거나 수사를 앞두고 있는 기업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번 사건에서 기업들은 '뇌물공여' 의혹을 받고 있는 데 비해 당시 기업들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지만 기업들이 '정권의 강요'에 못이겨 어쩔 수 없는 돈을 냈다고 주장하는 모습은 상당히 유사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차떼기 사건에서 당시 법원은 "정당 측이 먼저 정치자금 제공을 강력하게 요구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런 사정만으로 형법상 책임을 면할 만한 '강요된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며 기업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靑 제안 불법 인식 못했다" 주목 필요

그러나 이번 사건을 당시 사건과 완전히 동일선상에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차떼기 사건에서 정당의 요구 이면에는 기업들의 불법을 조장하는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 반면 이번 사건에서는 현대중공업 등 사업상 불필요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재단출연 제안을 거절한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 제안 자체를 기업들이 불법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기업들이 정치자금을 건네고도 영수증을 받지 않고 기부금 한도를 초과해 유죄를 인정받았던 것과 달리 '뇌물공여' 의혹을 받고 있는 이번 사건에서는 유죄의 전제가 되는 '부정한 청탁'이나 '대가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에 책임을 묻기 전에 정상참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특검이나 법원이 세무조사 등 정부 보복을 우려해 특정한 대가를 원했다기보다는 일종의 '보험금' 차원에서 재단에 돈을 출연했다는 기업들의 목소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형로펌 한 관계자는 "세법의 경우 가장 법해석이 난해한 대표적 개별법으로 꼽히는데 이는 기업이 어느 정도 준법감시시스템을 마련해 놓고 있더라도 정권이 독하게 마음먹고 세무조사를 벌이면 '탈세'에서 자유로울 기업은 거의 없다는 말도 된다. 탈세 고의가 없으면 세금추징,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검찰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역점사업에 불참할 경우 세무조사 등 보복을 당할 우려가 높은 만큼 무조건 뇌물사건으로 이번 사건을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조성환 바른기회연구소장은 "차기 정권에서도 기업을 필요로 하는 정부 역점사업은 분명 시행될 것"이라며 "통치행위가 잘못됐다고 해서 '부정한' 목적을 갖고 있지 않고 보복의 우려 및 일정부분 필요에 의해 사업에 동참한 기업들을 무조건 불법행위의 공범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회정의에도 반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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