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몸으로 기사 쓰는.. 기업 사회공헌 동행기] 연탄 묻어 까만 얼굴, 배달 끝나니 누구보다 밝은 얼굴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23 18:05

수정 2017.01.23 22:21

한화투자증권·한화손해보험 신입사원 연탄봉사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두사람 지나가기도 힘든 골목길
손에서 손으로 전하는 웃음 꽃
"여기가 개발되면 주민 어떡하나" 쉬는시간에도 온통 주민 걱정뿐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이제 일상이 됐다. 사회공헌활동은 기업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한다. 좋은 기업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신입사원은 물론 사장님들까지 손수 나서 김치도 담그고, 연탄도 나르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의 시선은 냉랭하다. '생색내기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일쑤다. 실제로 서울 시내나 경기도 인근에 있는 복지단체의 경우 연말이면 찾아오려는 기업들이 많아 '사진만 찍고 갈 거면 차라리 오지 말라'고 대놓고 얘기한다. 정말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은 색안경을 끼고 볼 만큼 허술하고 허접할까.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편집자주>
한화투자증권과 한화손해보험 신입사원 26명은 지난 20일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연탄 1500장(총 기부는 5000장)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하는 봉사활동을 펼쳤다.<div id='ad_body2' class='ad_center'></div> 신입사원들이 일렬로 서서 연탄을 나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한화투자증권과 한화손해보험 신입사원 26명은 지난 20일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연탄 1500장(총 기부는 5000장)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하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신입사원들이 일렬로 서서 연탄을 나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1월 2일 입사한 한화투자증권과 한화손해보험 신입사원들과 함께 연탄봉사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기부하는 연탄은 5000장이지만 배달까지 하는 양은 3분의 1 정도인 1500장이었다. 한화투자증권 11명, 한화손해보험 15명에 기자까지 모두 27명. 한 사람이 60장씩 나르면 그만이었다.

일부 여직원(알고보니 10명이었다)이 포함돼 있다고 해도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상계동 백사마을에서도 연탄을 나른 적 있는데…'라는 생각에 자신감도 충만했다. 그런데 날씨는 도와주지 않았다. 연탄 나르는 날인 지난 20일은 이번 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이날 오후 작업장소인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에 도착했다.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날 서울의 적설량은 6㎝를 넘었다. 길 위의 차도, 사람도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구룡마을은 서울 시내 마지막 판자촌이다. 세찬 바람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비닐과 나무판자로 덧댄 작은 집들이 1000가구 넘게 모여있다. 빛바랜 사진 속의 1950~60년대의 모습 그대로다. 우리의 일상에서 보기 힘들어진 연탄이 이곳에서는 '겨울 필수품'이다.

신입직원들에게 "연탄을 쓰는 집에서 살아본 적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26명 가운데 2명이 손을 들었다. 이어서 "어떤 이유에서건 연탄을 날라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역시 손을 든 사람은 둘 뿐이었다.

올해도 구룡마을의 겨울은 춥고 길다. 봉사단체 나눔코리아 관계자는 "이번 겨울에는 연탄봉사활동이 예년보다 40%가량 줄었다"면서 "구룡마을은 가구 수가 많고, 연탄수요도 많다"고 설명했다.

■웃음과 함께 한 봉사활동

마을 뒷편 대모산의 영향인지 한낮에도 기온은 영하를 가리키고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무시로 뺨을 때리듯 스쳐갔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골목길은 미끄러웠다. 등산화를 신었지만 걸음걸이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언덕배기 중간에 연탄이 잔뜩 쌓여 있었다. 1차로 나를 900장이다. 하얀 눈과 검은 연탄이 묘한 대비를 이뤘다. 배달장소는 그곳에서 20여m 떨어진 어느 할머니의 집이었다. 한화투자증권 신입사원 김누리씨(여)는 "TV에서나 봤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면서 "약간은 설레기도 하고, 보람 찬 일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골목이 좁아도 너무 좁았다. 두 사람이 지나기에도 힘들 정도였다. 전부 일렬로 늘어서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창고에서 연탄쌓는게 제일 힘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칫 균형이 맞지 않으면 애써 나른 연탄이 무너져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힘들 일은 젊은 신입사원들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줄의 맨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40대 중반의 '아재'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청춘을 힘에서 이겨낼 방도는 없었다.

10여분이 지나면서 조심스럽기만 하던 손놀림이 차츰 빨라졌다. 어느 공장 컨베이어벨트 위의 로봇처럼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었다. 3.5㎏의 연탄무게보다 '한 장이라도 깨면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어깨를 더 짓눌렀다.

신입사원들은 활기찼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소리가 들렸다. 속으로 '그 웃음이 얼마나 가나 보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웃음소리는 봉사활동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연탄 300장을 나르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손주뻘 아이들의 수고에 집주인 할머니는 따뜻한 차로 인사를 대신했다. 손에 익은 연탄나르기는 이제 가속도가 붙어 다음 300장은 더 신속하게 배달이 완료됐다.

본지 윤경현 기자(맨 앞줄 오른쪽)가 한화투자증권, 한화손해보험 신입사원들과 연탄을 나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본지 윤경현 기자(맨 앞줄 오른쪽)가 한화투자증권, 한화손해보험 신입사원들과 연탄을 나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올해 1500장, 내년엔 2000장

잠시 주어진 휴식시간, 신입사원들은 벽에 붙은 개발공고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기가 개발되면 원주민들은 어디로 가느냐'가 주요 관심사였다. 서울시 출입기자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임대주택을 지어서 원주민들에게 공급할 것"이라고 설명하자 다소간 안심을 하는 모습이었다.

2차 600장은 나르기가 좀더 쉬웠다. 이번에도 한줄로 늘어섰다. 들어가는 연탄의 수를 헤아리기 위해 한 장씩 숫자를 외쳐가며 옆으로 전달했다. 곁에 있던 나눔코리아 관계자는 "비슷한 인원의 다른 봉사팀에 비해 나르는 양이 3배 정도 된다"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 신입사원 김다송씨(여)는 "TV나 신문에서 기업들의 봉사활동에 대한 소식을 접했을 때는 솔직히 '보여주기 위한 쇼'를 한다고 생각했었다"면서 "이렇게 힘들게 할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지만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강조했다.

오후 3시가 넘어가자 남은 연탄은 200여장으로 줄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같다" "팔이 아프다"는 여직원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앞에 서 있던 신입사원(여)에게 "지금 이 순간 제일 바라는게 있다면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200이라는 숫자가 0으로 바뀌는 마법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힘든 순간이었으나 그 누구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육체적으로는 조금 힘들지만 봉사활동이 이렇게 즐거운지 몰랐다" "내년에는 2000장을 나르러 오겠다"는 진심어린(?) 소감과 약속도 있었다.

오후 3시50분이 되자 1500장의 연탄이 눈앞에서 모두 사라졌다.
당초 예상보다 한시간 가까이 빨리 일을 마친 것이다. "앞으로 절대 연탄불고기집에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장갑을 낀 손이 까매지고, 얼굴에는 연탄가루가 붙었지만 봉사활동을 마친 한화투자증권.한화손해보험 신입사원들의 얼굴은 더 없이 환했다. 이것이 바로 봉사활동의 마법이 아닐까.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