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행 끝에 최순실씨 형사재판에 모습을 드러낸 고영태씨가 헌법재판소의 증인 출석요구서 수령을 거부했다. 고씨가 끝내 헌재 증언대에 서기를 거부할 경우 고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억울함을 입증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측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고영태 출석요구서 수령 않아..朴대통령 측 ‘악재’
6일 헌재 관계자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씨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고씨에 출석요구서가 든 종이봉투 전달을 시도했으나 고씨는 이를 수령하지 않고 재판정 안으로 들어섰다. 헌재는 서울중앙지법에 협조공문을 보내는 등 원활한 송달사무를 위해 여러 방안을 물색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 증인출석 의무는 출석요구서를 송달받은 시점부터 효력이 발생해, 고씨는 헌재에 나오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헌재는 앞서 고씨에 대한 신문기일을 두 차례나 잡았으나 고씨가 주소지에 나타나지 않고 불출석, 오는 9일 열리는 12차 변론기일에 세 번째 신문기일을 잡은 상태다. 고씨가 출석요구서를 끝내 수령하지 않고 다시 잠적할 경우 헌재는 고씨에 대한 신문 없이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다.
고씨의 불출석은 박 대통령 측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높다. 박 대통령 측은 지난 변론기일에서 줄곧 고씨와 고씨 측근 등에 의해 박 대통령 탄핵사태가 꾸며졌다고 주장해왔다. 최씨와 불륜관계에 있던 고씨가 관계가 깨진 것에 분노, 증거를 조작해 언론사 등에 제보하며 사태가 악화일로를 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이 이를 입증할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고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중요한 기회로 여겨져 왔다.
고씨가 끝내 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 박 대통령 측은 주장을 입증할 만한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측은 서울중앙지검에 고씨와 고씨와 함께 근무한 류상영씨의 주소, 거소, 연락처 등을 알려달라는 취지의 사실조회 신청을 헌재에 접수하며 고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12차 변론기일까지 고씨와 류씨의 출석이 불가능해질 경우 새로 2명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한다는 방침이지만 헌재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김기춘, ‘건강문제’ 신문기일 미뤄질 듯
국회 소추위원단 측이 신청한 증인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날 7일 오후 4시로 예정된 신문기일에 불출석하겠다는 입장을 헌재에 전했다. 김 전 실장이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엔 의사 소견서와 함께 건강을 이유로 출석기일을 미루고 추후 출석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구체적인 병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 소추사유 전반에 깊이 개입된 핵심 증인으로 꼽힌다. '왕실장'이라 불리며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던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를 지시한 혐의로 특검에 구속돼 피의자로 전락했다. 김 전 실장의 신병이 확보돼 언제든 강제구인조치를 취할 수 있는 만큼 헌재가 한 차례 출석기일을 미룰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 전 실장의 불출석에 따라 7일 열리는 탄핵심판 11차 변론기일엔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만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헌재는 이날 대통령 측이 추가로 신청한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15명의 증인의 채택 여부도 결정한다. 추가 증인 채택여부는 탄핵심판의 결론 시점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여서 헌재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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