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열 화백, 9년만에 국내 개인전
'암시적 기호학' 50여점 작품 선봬
'암시적 기호학' 50여점 작품 선봬
"그림은 즐겁고 자유로워야죠. 그러니 왜 그렸느냐, 왜 붙였느냐 묻지 마세요. 허허."
마치 칠판에 분필로 끄적인 어린아이의 낙서와 같은 그림. 때로는 그 위에 알록달록 단추를 붙이기도 하고 낡은 함지박을 주워 안에 칠을 하고 가운데 사람을 그리기도 했다. "이 안에 코는 뭘로 만든지 아세요? 계란판 잘라서 붙인거예요."
장난꾸러기 같은 오세열 화백(72.사진)의 말이 유쾌하다. 196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수상한 이래 40년간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온 그는 지난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로 주목받았다. 또 파리, 런던, 상하이 등 해외 주요도시에서 개인전을 연이어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서울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암시적 기호학'전은 그가 국내에서 펼치는 9년만의 개인전. 작품활동 초기인 1960년대 작부터 최신작까지 5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의 총 작품 수가 100점 남짓이니 이번 전시는 그의 40년 작품활동을 망라한다 볼 수 있다.
어려운 전시의 제목과 달리 그의 작품들은 순수함과 위트가 묻어 있다.
"누구나 어린시절이 있잖아요. 그 마음으로 그린 거죠. 판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대로."
서울 만리동에서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그는 여섯살 때 6·25전쟁을 겪고 피난을 가 충남 아산에서 자랐다. 그 기억이 남아서였을까. 밝아 보이는 그의 작품 속에도 한편으론 비율이 맞지 않고 팔과 눈이 없는 사람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전쟁 후 끝없는 성장지향 사회에서 욕심에 물든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는 그는 "작품을 통해 순수한 어린시절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치유적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다"고 말했다. 경쟁사회 속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그의 작품 속 뒤틀린 인간의 형태로 드러난 것.
그림 가운데 왜 딸기를 넣었느냐는 질문에 "딸기도 상하고 뭉크러진 것을 그린 것"이라고 답한 그는 "공사장에서 주워온 소품, 쓰레기처럼 보이는 병뚜껑을 가운데 배치하면서 우리가 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난기'라는 맥락 위에 어떠한 의도 없이 본능에 의존한 채 작품을 하고 있다는 그이지만 이면엔 수도자적인 삶도 엿보인다. 멀리서 보면 분필로 찍 그은 듯한 선들은 가까이서 보면 캔버스를 일일이 면도칼과 이쑤시개로 긁고 파낸 흔적이다. 광목천으로 캔버스를 손수 제작하고 그 캔버스 위에 밑칠과 덧칠을 여러 번 한 뒤 그 위에 뾰쪽한 물체로 선과 숫자를 파내는 과정은 고행에 가깝다. 제자도 없이 작품을 만들기에 때로는 한 작품을 내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 상처를 입히는 거예요." 그는 작업과정 하나하나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행위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 구상 이미지로부터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스스로도 작품을 제작하며 마지막에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긴장하기도 해요." 그러다보니 오 화백의 손은 성할 틈이 없다.
덧칠을 한 단색 화면 위에 오브제가 배치된 그의 작품 특성으로 한동안 '포스트 단색화가'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했던 그는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며 "차라리 '숫자회화'를 한다고 해달라"고 했다.
1부터 0까지 숫자가 빼곡한 그의 작품에 대해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숫자로 규정되는 현대사회를 생각했다"며 "하지만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길 바란다. 사람들은 숫자를 보면 풀어내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달 26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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