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에 굴착기를 몰고 들어간 혐의로 기소된 정모씨의 변호사는 배심원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배심원 8명은 한층 진지한 눈빛으로 피고인을 바라봤다.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은 방청을 나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파이낸셜뉴스 수습기자는 그림자배심원 자격으로 해당 국민참여재판을 지켜봤다. 그림자배심원은 일반 배심원과 달리 재판부에 평의·평결 결과를 건의하지 않고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검찰청 굴착기 기사, 국민참여재판 벌여
30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굴착기 기사 정모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정씨는 지난해 11월 1일 대검 청사에 굴착기를 몰고 돌진한 혐의다. 정씨는 "최순실씨가 언론에서 '죽을죄를 졌다'기에 죽는 것을 도와주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정씨는 하늘색 수의를 입은 채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재판이 시작되자 배심원 8명(예비배심원 1명 포함)은 자리에 앉아 몸을 곧추세웠다. 배심원석에는 20~30대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이 절반 이상이었다. 중장년층 남성 2명도 앉아 있었다.
국민참여재판은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지만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정씨 측 이덕춘 변호사는 "열 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서 이야기한다"며 "죄질이 나쁘더라도 일반인이 판단하면 완화된 양형이 나올 수 있는 소송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檢 '청원경찰 피해' vs 辯 '일부는 검찰 책임'
검찰은 정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대검찰청으로 돌진하는 정씨를 막다가 다친 청원경찰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 행위가 정의가 맞느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은 정씨의 주요 범행 행위가 담긴 영상을 증거로 제시했다. 배심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굴착기가 계단을 부수는 영상으로 향했다. 검찰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해당 범죄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정씨 변호인 측은 해당 범죄는 집행유예 사유라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정씨에 대해 "왜 이와 같은 행위를 저질렀나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이 터져 최순실 국정농단이 보도된 때가 2014년 11월께다. 검찰이 이 문건을 허위라고 종결했다. 어찌 보면 정씨 범행은 잘못된 검찰 수사가 불러온 참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씨의 동생은 증인으로 나와 형의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형이 죄를 지은 것은 맞다. 그런데 형이 사람을 다치게 하려고 한 일은 아니다"고 전했다. 이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굴착기 기사의 경우 국정농단 등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에 충분히 분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배심원 5명 실형 의견..판사 배심원 의견 따라
정씨는 최후변론에서 피해를 본 청원 경찰에게 사과했다. 그는 "저로 인해 다친 청원 경찰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수감 생활 중 TV로 시청한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폭력사건이 없는 것을 보고 제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최후 진술이 끝나고 배심원은 평결·평의에 들어갔다. 정씨 최후 진술을 끝으로 재판을 모두 방청한 일반인 배심원 중 5명은 실형 의견을 냈다. 나머지 2명은 집행유예 의견을 냈다.
재판부가 선고를 위해 법정에 들어섰다. 법원에 있는 모든 사람이 판사를 바라보았다. 재판부는 "양형에 대해 만장일치는 아니었지만 배심원들 다수 의견을 존중해 판결을 선고한다"며 "피고인을 징역 2년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배심원들은 자신들의 평결과 일치한 재판부 판결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정씨는 곧게 앉은 자세로 판결을 받아들였다. 그는 담담한 걸음걸이로 법정에서 퇴장했다.
이날 그림자배심원으로 참여한 대학생 오동현씨는 "법을 공부하기에 앞서 실제로 재판에 참여해보고 싶었다"며 "(국민참여재판이) 사법부의 신뢰를 높이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른 그림자배심원 대학생 정혜윤씨는 "국민참여재판은 다른 재판보다 이해가 쉽다"며 "공정한 판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최용준 남건우 김유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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