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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레저] 화려한 야경 뒤에 슬픈 아픔이 있었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13 19:47

수정 2017.04.13 19:47

역사의 상처마저 아름다운 곳, 부산
전쟁.재건의 흔적 그대로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과거 일본인들의 공동묘지터
피란민들 그 위에 집 짓고 살아
피란수도 거점이던 대청로는 당시 중앙청사.의사당 있던 곳
야경 명소 놓치기 싫다면
동구 '유치환우체통'에 가면 저 멀리 바다와 부산항대교 보여
시간마다 뿜어내는 불빛 장관
해운대해수욕장, 광안리해수욕장, 광안대교, 마린시티. 부산 하면 바로 떠오르는 부산의 화려한 이미지다. 하지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면 시간이 멈춘 듯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장소가 산복도로다. 부산에는 유난히 산복도로가 많다. 동구의 수정동.초량동, 중구의 영주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을 거치면서 생긴 산복도로는 가난한 산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길에는 고향을 등진 이들의 궁핍했던 삶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산복도로는 힘든 삶의 터전에서 부대끼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고 배려하는 인생의 공간이다. 물 한 동이를 길어올리기 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산을 오르던 고난의 행로이기도 하다. 산복도로는 최근 들어 부산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알려지면서 여행객에게 각광받고 있다. 고단한 삶의 터전이며서 아픈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디오라마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영주동 산복도로 야경
디오라마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영주동 산복도로 야경

비석문화마을 벽화
비석문화마을 벽화


【 부산=조용철 기자】 부산은 6·25전쟁 기간 중 1023일 동안 대한민국의 수도 기능을 수행했다. 이 기간 동안 부산은 한국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고 해외로부터 원조물자와 인력이 들어오며서 경제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 부산은 수많은 피란민들의 최종적인 삶의 터전이었으며 전쟁의 고통과 극한 결핍을 맨몸으로 이겨내야 하는 또 다른 전쟁과 생존의 현장이었다.

산복도로 아래 중구 광복동과 보수동, 대청동을 가로지르는 대청로는 피란수도의 거점역할을 했다. 대청로 인근에 밀집된 건축물과 공간들은 피란수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당시 정부는 현재 동아대 부민캠퍼스 자리에 있던 경남도청을 중앙청사로, 현재 임시수도기념관인 도지사 관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했다. 국회는 도청의 무덕관과 부산극장을 의사당으로 사용했고, 법원은 지금의 동아대 법학대학원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대청로엔 이 밖에도 한국은행, 각국 대사관, 상공회의소, 중앙관상대, 언론사 등 교육.문화.국방.상업시설이 집중됐다. 보수동 책방골목과 대청동 인쇄골목은 각종 정부홍보물뿐 아니라 정기간행물, 전시문학 작품을 만든 문화의 산실로 남아 있다.

■묘지 위 산동네 '비석문화마을'

부산 서구 아미동 산 19번지. '비석문화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피란수도'의 가슴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상징적 공간이다.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어떻게든 먹고살겠지'하는 마음으로 부산역 앞 부산일보 옆 골목으로 모였다. 당시 부산시는 피란민들에게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과 천막을 나눠줬다. 피란민들이 종이 한 장과 천막을 들고 찾아간 곳이 바로 아미동, 청학동, 당감동, 대신동, 천마산이었다.

지금의 비석문화마을은 당시 아미동으로 찾아간 피란민들이 만든 마을이다. 하지만 아미동을 찾아간 피란민들은 이곳이 공동묘지라는 것을 알고 아연실색했다. 그곳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공동묘지가 있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망과 함께 일본인들이 황급히 귀국길에 오르면서 수백기의 무덤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 공동묘지 옆에는 화장터도 있었다.

하지만 피란민들에게 이것저것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피란민들은 산속이든 묘지 위든 우선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묘지 위에 천막을 치고 집을 지었다. 다행히 묘지엔 상석이 있었기에 별도로 축대를 만들 필요가 없어 집짓기에 유리했다. 지금도 마을계단이나 축대, 담장에는 당시 이용했던 비석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마을 입구엔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길가에 드러난 옛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묘지의 상석 위에 그대로 벽을 만들고 지붕을 씌운 '하꼬방'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당시 피란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집의 형태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했다. 처음엔 천막집이었지만 이내 판잣집을 지었다. 다시 루핑집, 슬레이트집으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갔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양옥집이 곳곳에서 지어졌다. 비석문화마을의 가옥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일반 집들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이층이 일층보다 면적이 넓다. 대지는 주인이 있지만 하늘은 따로 주인이 없기 때문에 이층을 조금이라도 넓게 사용하려는 방편이었다. 지붕으로 사용한 슬레이트 위를 보강하지도 않고 그대로 이층을 올리기도 했다.

동아대 석당박물관에 전시된 전차
동아대 석당박물관에 전시된 전차

돼지국밥
돼지국밥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하꼬방'. 일본인들의 공동묘지를 그대로 활용해 축대를 세운 집으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하꼬방'. 일본인들의 공동묘지를 그대로 활용해 축대를 세운 집으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낮보다 아름다운 부산 야경

부산 야경 하면 예전엔 광안대교를 가장 먼저 꼽았다. 부산에서 야경을 감상한다는 것은 광안대교를 어디서 볼 것인지를 선택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황령산과 금련산이 부산 야경의 명소로 각광을 받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산 밤 풍경의 주역이 바뀌었다. 최근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부산의 야경 명소는 동구의 유치환우체통이다.
유치환우체통에선 지난 2014년 개통한 부산항대교를 중심으로 탁 트인 바다와 부산항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부산항대교와 부산항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싶다면 중구 스카이웨이전망대와 역사의 디오라마 전망대도 최적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산복도로를 따라 산 중턱에 있는 집들과 거리마다 노란색의 가로등 물결, 길게 늘어선 아파트 불빛, 시간마다 다양한 빛을 뿜어내는 부산항대교를 만나볼 수 있다.

ycch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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