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문재인 대통령 시대] 흥남철수때 피난길 오른 가족사가 곧 ‘영화 국제시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10 01:00

수정 2017.05.10 09:37

공산당 거부한 채 南으로 온 아버지
그의 부재가 문제아 아들을 司試로
[문재인 대통령 시대] 흥남철수때 피난길 오른 가족사가 곧 ‘영화 국제시장’

문재인 대통령, 그의 가족사는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6·25전쟁 당시인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때 무기를 버리고 화물창에 피란민 10만명을 태우고 남쪽으로 향해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린 미군의 메러디스호. 그의 부친 문용형씨와 모친 강한옥씨(90) 그리고 바로 위 누이가 그 배에 올라탔다. 도착한 곳은 경남 거제 장승포항이었다.

그로부터 만 2년 뒤인 1953년 1월 피란지인 경남 거제 명진리에서 2남3녀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전후 가난은 피란민에게 더욱 혹독했다.

1978년 작고한 부친 문용형씨는 이북지역의 명문 흥남농고를 나와 공무원 생활을 했으며, 유엔군 진주 당시엔 시청 농업과장을 지냈다.
공산당 가입 제의를 거부한 채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왔지만 아무런 밑천 없는 피란 생활은 천형과 같았다. 그가 일곱 살 되던 해 거제를 떠나 이북 출신 피란민이 많이 살던 부산 영도 판자촌으로 이사를 했지만 생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장사로 지방 이곳저곳을 떠돌면 어머니가 연탄 리어카를 끌었고 시장에서 구제품을 팔며 생계를 꾸렸다.

부자의 과묵한 성격 탓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별로 없지만 아버지가 가장 기뻐했던 순간만은 아들의 기억 속에 지금도 살아있다. "제가 그 시기 한강 이남에서 가장 명문으로 이름난 경남중학교 합격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정말 기뻐하셨어요."(대화록 '대한민국이 묻는다' 중)

이어 경남고에 입학했지만 싸움에 말려 정학을 당하기도 했고, 운동하는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만 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교 생활은 그의 이름을 빗대 붙은 별명처럼 '문제아'였다.

그래도 학교 성적은 좋았다. 가난한 형편 탓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1972년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엄혹했던 시절 독재정권에 저항해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되길 수차례. 그러다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사법고시 도전의 마음을 먹게 했다. 장남으로 집안을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뒤늦게나마 아버지께 한 번이라도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은 2년 뒤 1980년 사시 합격(22회)으로 결실을 봤다.

이듬해엔 대학 2년 후배인 김정숙 여사(63)와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와의 연애사에 대해 "아내와의 연애는 구속과 강제징집, 고시 공부로 '면회의 역사'"라고 말한다.

김정숙 여사는 '유쾌한 정숙씨'라는 후보 부인의 블로그를 운영할 정도로 쾌활하고 친화력 있는 이미지로, 이번 대선 기간 다소 무뚝뚝한 성격인 문 후보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슬하엔 아들 준용씨(36)와 딸 다혜씨(34)가 있다. 다혜씨는 아버지의 정치 참여를 반대, 좀처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지난 8일 마지막 광화문 유세현장에 영상편지를 띄워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는 "무거운 책임을 다하시는 모습, 그런 아빠를 저는 신뢰한다"며 지지자로 아버지를 응원했다.

조은효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