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임원이 입을 닫았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으나 증언을 거부했다. 삼성 임원들이 뇌물 공여 혐의로 재판받는 상황에서 최대한 말을 아껴 혐의 입증에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취지다. 이재용 부회장 등 다른 삼성 임원들도 같은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이익을 위해 사법제도 자체를 무시한 태도"라며 비판했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공판에 박 전 사장은 증인으로 나왔으나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 질문에 전혀 답하지 않았다.
박 전 사장은 검찰이 증언 거부 배경을 묻자 "제가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며 "변호인 조언에 의하면 증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박 전 사장은 모든 신문에 "죄송합니다. 증언을 거부하겠다"는 말로 일관했다.
장성욱 특검보는 "(증언 거부는)이 부회장을 정점으로 한 삼성그룹 차원의 통일된 의사표시"라며 "이렇게 진술을 번복하는 이유는 위증죄로 추가 기소될 두려움과 총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 전 사장의 태도는 사법제도 자체를 무시하는 삼성의 오만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면서 "법에 따른 신문에서 삼성이라고 특혜와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박 전 사장의 '침묵'에 대해 위증죄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우리나라 형법은 법정에서 선서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했을 때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자신의 재판에서 신문을 받던 중 거짓 진술을 한다면 정도에 따라 정당한 방어권 행사로 인정될 수 있다. 한웅재 검사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피고인 신문을 받을 때는 거짓말을 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증인이 허위 진술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받는데, 변호인에게 이런 조언을 받았나"라고 물었지만 박 전 사장은 답을 하지 않았다.
앞서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지난해 7월 25일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직후 대한승마협회와 관련된 긴급회의를 열 것을 지시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만나 30~40분 정도 면담한 직후 박 전 사장에게 "빨리 들어오시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문자가 전달된 직후 박 전 사장이 또 다른 삼성 관계자로부터 "승마협회 관련 회의를 빨리 준비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삼성 관계자들이 증언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핵심 증인인 이 부회장을 먼저 불러 심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1주일 전에 갑자기 증인을 바꾸는 것은 변호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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