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檢, 폭탄주 문화 '옛말'..후배들에 청하면 "쉬고 싶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5 14:55

수정 2017.06.25 14:55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1. 최근 재경 검찰청의 A부장검사는 후배 검사에게 놀랐다. 퇴근 후 간단히 술 한잔 하자고 말을 건넸으나 "쉬고 싶다"며 거절한 것이다. 거절 이유가 할 일이나 선약도 아니고 쉬고 싶기 때문이란 게 A부장검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A부장검사는 "우리 평검사 시절 때는 선배들이 술 한잔 하자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참석했다"며 "요즘은 쌓인 업무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술자리도 후배들에게 청하기가 눈치 보인다"고 털어놨다.

#2. 최근 서울 관내 검찰청의 B부장검사도 술자리 도중 후배가 집에 가겠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자리를 털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대가 변했다는 걸 느꼈다.
B부장검사는 "후배들에게 술자리는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女검사 증가, 정부 개혁 등 술자리 부담
어느 분야보다 선후배 위계질서가 강하고 술자리가 많기로 유명한 검찰의 음주 문화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검찰이 '폭탄주'의 원조 중 하나로 꼽혔지만 젊은 검사들이 자리를 꺼리거나 거부해 폭탄주 문화가 사라지는 모양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 개혁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행동 하나 하나에 조심스러워진 분위기도 폭탄주 문화 단절에 한몫 하고 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장검사 등 최근 검찰 간부가 후배 검사에게 술자리를 청하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10년 전만 해도 평검사는 통상 매주 3~4일 크고 작은 술자리에 불려갔지만 요즘은 회식도 수개월에 한번씩이라는 게 평검사들의 전언이다.

검찰의 폭탄주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다수의 평검사는 야근이 많아 피곤한 점과 여성 검사가 늘어난 점, 검찰 개혁 분위기 등이 술자리를 꺼리게 되는 원인이라고 꼽는다. 실제 2000년 전체 검사의 2.4%(29명)였던 여성검사가 올 2월 기준 592명(28.9%)으로 17년 사이 20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중앙지검 C검사는 "여성 검사가 증가하면서 술을 먹자고 말하는 게 눈치 보인다"며 "여성 검사들이 대개 술을 마시기 싫어하는데다 가정과 육아도 신경써야 해 술자리 자체를 꺼린다"고 말했다.

부산지검 D검사도 "예전보다 사건이 많아 야근이 늘었다"며 "피곤하고 일이 많은 상황에서 술자리 갖기가 여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간부들 "상관 평가제 부담, 오해 만들기 싫어"
최근 새 정부의 검찰 개혁 및 '돈봉투 만찬' 등 검찰 이미지 실추도 술자리가 부담되는 이유라고 한다.
수원지검 E검사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 술자리를 갖고 싶겠느냐"며 "대개 몸을 사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부장검사 등 간부들은 '상관 평가제’가 신경 쓰여 후배 검사들에게 술자리 청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털어놓는다.
대검찰청 고위 간부는 "'화합의 장'을 만들기 위해 술자리를 청했는데 상관 평가에 악영향을 미치면 안하느니만 못한 셈"이라며 "그런 오해를 받기 싫어 술자리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