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갑(甲)'이 아니다. 김정은의 북한은 스스로를 미국과 대등한 패권국(dominant power)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인정하고 대북정책을 풀어가야 한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박사.사진)은 한국이 맞닥뜨린 '대북 딜레마'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차 박사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국방연구원(KIDA) 입사를 시작으로 25년여간 북한 권력구조, 한반도 평화 등에 관해 연구해 오고 있다.
차 박사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사회가 북한 체제를 보는 시각"이라면서 "보수든 진보든 한국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보수 진영은 북한을 곧 무너질 정권으로 보고 무시하고, 진보 진영은 북한을 불쌍히 여겨 우리가 대국적으로 먼저 손을 내밀면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이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북한이 우리의 이런 시각을 대놓고 비웃은 것"이라면서 "'우리(북한)는 곧 무너지지도 않고 불쌍하지도 않다. 오히려 우리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전전긍긍하게 될 서울이 불쌍하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차 박사는 그러면서 이런 북한의 인식을 전제로 한 대북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의 북한이 과연 체제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대화에 나올까? 아니라고 본다"면서 "그 연장선에서 한·미 연합훈련 축소나 한반도 평화체제 비전을 꺼내면 북한도 유화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맞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만 6월 초까지 다섯 차례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한국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든 진보 정부가 들어서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라는 게 차 박사의 진단이다. 북한은 한국 정부를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차 박사는 '대화 입구'가 수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 정권으로선 현재 문재인정부가 대화 입구로 내건 핵동결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차 박사는 "성능과 수량에 제한을 둬야하겠지만 북한이 가진 핵의 일정 부분을 인정하고 묶어둔 채 남북 관계를 운영하는 방안도 이제는 강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것이 북·미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을 키우는 것이자 북한에서 중국을 떼내는 방법, 나아가 김정은에게서 엘리트 군부를 떼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차 박사는 "이 카드를 받아 북한이 대화에 나오면 그때부터 장기적으로 비핵화 절차를 밟아갈 수 있고, 이마저도 북한이 안 받을 경우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을 마냥 감싸기는 힘들게 된다"면서 "국제 대북제재 속에서 지금 북한 관료들도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인데, 핵보유국 인정 카드도 안 받을 경우 김정은과 엘리트 군부의 사이도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 정부의 조급함을 경계했다. 차박사는 "평양이 저렇게 나오는 이상 정부 차원의 중요한 대화나 대북경협은 당분간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면서 "제재.대화 병행을 이어가되, 8.15이산가족 상봉, 평창동계올림픽 단일팀 등 시기를 못 박는 방식은 우리가 불리하다"고 했다. "'김정은 평양'이 패권국의 망상 속에서 어떤 것을 하든 '문재인이 이끄는 서울'은 가볍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어야 한다"고 그는 부연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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