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액괴(액체괴물. 사진) 신기하죠? 제가 만들었어요”
지난 7일 오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인근 놀이터에서 김모양(10)과 이모양(10)이 “말랑말랑해서 기분이 좋다”며 형광색 젤리 같은 물질을 야구공처럼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다.
이들은 “선생님이 액체괴물 갖고 놀지 못하게 해 속상하다”면서 “친한 친구 생기면 (액체괴물을) 반으로 잘라서 나눠 갖기도 한다”고 말했다.
10일 일선 학교 등에 따르면 최근 유치원 및 초등학생 사이에서 ‘액체괴물’ 만들기가 유행이다. 일각에서는 액체괴물에 화학물질이 혼합돼 유해성 여부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내분비계 장애 우려"
액체괴물은 푸딩과 비슷하다. 흐물거리는 모습이 괴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중국산 완제품 액체괴물이 있었으나 환경호르몬 논란을 거치면서 ‘직접’ 만드는 추세다.
액체괴물 만드는 법은 다양하다. 어린이용 점토에 뜨거운 물을 붓고 물풀, 베이킹소다, 붕사 등을 투입한다. 이밖에 ‘마블액괴’ ‘폭신이액괴’ 등 종류에 따라 샴푸, 쉐이빙폼을 넣고 혼합을 위해 전자레인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액체괴물 만들기가 인기를 얻은 것은 ‘유튜브' 때문이다. 아이들은 유튜브에 올라온 액체괴물 만들기 동영상을 따라하는 것. 유튜브에 올라온 액체괴물 영상은 80만개가 넘는다. '츄팝' '슬라임 코리아' 등 액체괴물 전문 유튜버도 있다.
놀고 싶은 아이와 유해성을 걱정하는 부모들은 액체괴물 때문에 전쟁을 치른다. 육아커뮤니티에는 액체괴물 유해성을 묻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정모씨(43·여)는 “문방구에서 직접 재료를 사며 성분을 확인할 수 있지만 물풀 가열 등 몇몇 과정은 불안하다"면서도 “아이가 하도 좋아해 어쩔 수 없이 함께 만든다”고 전했다. 학부모 한모씨(38·여)는 “아이들이 액체괴물을 얼굴에 덮고 가면놀이를 하거나 던지고 받기를 반복하면서 터지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유치원교사 주모씨(29·여)는 "피부가 약한 아이들은 액체괴물을 만들어 놀다가 손등이 가렵다거나 눈이 따끔 거린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유치원에서는 혹시 모를 부작용 때문에 액체괴물 만들기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채희영 한국소비자원 생활안전팀 대리는 "지난 5월 어린이 점토 18종에 대한 유해성 시험결과, 기준치 이상 중금속이 검출되지는 않았다"면서도 "시중에 있는 모든 제품을 시험한 것은 아니다. 모든 제품이 안전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물풀과 같은 소재는 환경호르몬인 프탈에이트계 가소제가 나올 수 있어 아이들 내분비계장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최재경 건국대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재료의 화학적 성분이 명확하게 제시돼 있더라도 본래 뜻에 맞지 않게 섞는 과정에서 아이들 신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성일 충북대의대 소아과 교수도 “아토피 있는 아이들은 피부 보호장벽에 손상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유튜브로 화학실험...학교 밖 교육 무방비
이 같은 우려에도 일부 아이들은 학교나 가정 밖에서 화학물질을 직접 구입하거나 실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박모군(11)은 “엄마가 액괴를 싫어해 몰래 만든 적이 있다”며 “만들 때 인분냄새가 나 어지러울 때도 있지만 집에서 못 만드는 친구에게 선물하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박군은 “친구들이 약국에서 액체괴물 재료인 붕사를 살 때 붕산과 헛갈리지 말라고 했다”며 “학교에서 별다른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액체괴물 같은 과학실험은 교사가 시행했다. 그러나 최근 아이들에 의한 학교 밖 화학물질이 늘고 있는 것이다.
김남태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인터넷으로 폭탄까지 만드는 게 현실”이라며 “전문가, 현장 선생님들과 미디어에서 이뤄지는 과학교육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정철 교육부 학교안전총괄과 연구원은 “학교 과학시간에는 안전교육 후 실험을 실시한다”며 “최근 무분별한 과학실험 동영상을 통해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할 염려가 있어 적절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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