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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블랙리스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19 17:22

수정 2017.07.19 17:22

블랙리스트(Blacklist)의 사전적 의미는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이다. 주로 권력자에게 밉보인 인물들이다. 어원은 17세기 영국의 찰스 2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찰스 2세는 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된 아버지 찰스 1세의 복수를 위해 당시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관 58명의 명단을 만들었다. 왕좌에 오른 찰스 1세는 이 가운데 13명은 사형, 25명은 종신형에 처했다.
블랙리스트는 정적을 없애려는 권력의 속성이 낳은 그릇된 유물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이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반공) 광풍은 할리우드에도 몰아쳤다. 공산주의에 동조했다는 의심을 산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 등 324명이 곤욕을 치렀다. 냉전의 산물인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는 100년이 넘는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큰 비극으로 기억된다.

명칭은 다르지만 동양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조선시대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의 책사인 한명회가 만들었다는 살생부도 블랙리스트였다. 자치통감의 저자인 중국 북송의 사마광은 재상에 오르면서 당적(黨籍)을 만들어 개혁파를 대거 숙청했다. 하지만 개혁파가 재집권한 뒤 갖은 수모를 당했다.

한국에서 블랙리스트는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작성됐다. 노동계와 대중가요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이다. 민주화 이후 기억에서 사라지던 블랙리스트가 다시 등장한 것은 이명박정부 때다. 정권에 비판적인 일부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금지하면서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더 노골화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 수천명에 달한다. 이 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재판을 받고 있다.

그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조가 10명의 '적폐' 공공기관장을 발표했다. 국정농단 세력에 '부역'하거나 성과연봉제 도입에 찬성했다는 이유에서다. 조만간 2차 명단도 발표한다고 한다.
블랙리스트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을 쥔 쪽에서 만든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논리라는 얘기다.
문재인정부가 19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다고 과연 블랙리스트가 없어질까.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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