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정부는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다룰 적십자회담은 몰라도 군사회담엔 나올 것으로 기대한 모양이다. 김정은 체제를 뒤흔드는 심리전 수단인 대북 확성기 철거나 가동중단 등 과실만이라도 따먹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수정 제안을 해올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남측의 '소망적 사고'임이 드러났다. 북측이 우리가 아니라 미국과의 평화협정 등 다른 큰 떡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일본 아사히신문은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로 미국과 담판을 지으라'는 긴급지령문을 해외 공관에 하달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북한은 핵을 포기하긴커녕 핵을 보유한 채 '핵군축' 협상으로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속셈일 것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인도적 차원에서 민간단체의 대북 접촉을 잇달아 승인했지만 외려 북한이 오불관언이다. 북핵 동결을 전제로 남북 간 대화를 시작한 뒤 관계개선을 통해 북한 비핵화의 출구를 찾겠다는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 시작부터 꼬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마당에 대화에 매달리는 인상을 주면 북측이 몸값을 올리려고 해 실질적 남북관계 개선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화 창구는 열어놓되 북측이 회담장에 나오기만 망부석처럼 넋 놓고 기다릴 이유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물샐틈없는 국제 공조로 압박과 제재를 강화해 북한 정권이 제 발로 대화 테이블로 걸어나오게 해야 한다. 확고한 한.미 동맹의 기반 위에서 김정은 정권이 끝내 핵 폭주를 멈추지 않아 빚어질지도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도 항시 준비해 놓아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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