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선 극작가 시드니에게 배달된 희곡 한 편, 그것은 '죽음의 덫'으로 이끈 욕망일까 희망일까?
인간의 욕망은 '죽음의 덫'으로 이끈다. 멀쩡한 사람에게도 나쁜 생각은 하루에도 몇번씩 머릿속을 스친다. 잠깐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내는 것이 일상다반사인데 극한의 상황에서 남의 떡이 내 앞에 왔다면 손을 뻗지 않을 수 있을까 반문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생존본능이지 않을까.
재능의 한계 앞에 맞닥뜨린 스릴러 극작가 시드니 브륄. 그동안 글쓰기 하나로 명성과 부를 쌓아왔는데, 화려했던 시절이 다 지나가고 정신 차려 보니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버겁다. 아내가 벌써 일주일이 넘게 오믈렛만 대령할 만큼 입에 풀칠할 돈도 없어져간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을 때, '데스트랩'이라는 제목의 희곡 한 편이 그에게 배달된다. 저자는 클리포드 앤더슨. 자신의 강의를 듣던 작가 지망생이었는데 그가 처음으로 썼다는 작품을 읽어보니 흠잡을 데가 없다. 마음 속에 드는 자괴감과 질투. 이런 작품 하나라면 인생의 말년을 낙낙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인데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번쩍하고 나쁜 상상이 끼어든다. '이 앤더슨이라는 사람이 작품을 발표하기도 전에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이러한 생각을 심장이 약한 아내에게 털어놓는데 그의 눈빛에 두려움이 스친다. 나를 그 정도의 사람으로 봤나 하며 화가 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결국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자'며 앤더슨을 초대한 브륄은 그의 작업실, 아내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아내와 함께 집 앞 밭에 파묻는데 여기서 뻔한 것 같은 이야기가 또 한번 뒤틀린다.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연극 '데스트랩'은 1978년 극작가 '아이라 레빈'에 의해 탄생했다. 이후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고 크리스토퍼 리브, 마이클 케인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브로드웨이 최고의 반전 스릴러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3년 전인 2014년 초연된 데 이어 재작년인 2015년에 재연됐고 올해 세번째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초연 당시 객석점유율이 85%에 이르는 등 연극계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초안이던 희곡 '데스트랩'이 완성되어가는 과정 속에 벌이는 배우들의 실랑이는 실감난다. 어쩌면 조금 예민할 수도 있는 성 정체성의 문제와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극 속에 타이트하게 담아내 지루하진 않다.
조연으로 나오는 '헬가 텐 도프' 역 또한 극을 너무 무겁지 않게 잡아준다. 음악은 조금 날카롭지만 무대 구성은 탄탄하다. 마치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실험실' 세트를 보는 것 같다. 직각이 아닌 조금은 삐뚤어진 작업실 문과 창문, 천장이 마치 배우들을 거미줄처럼 붙잡는 듯하다. 공연은 9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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