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자' 그들의 상처는 광복 72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았다. 잔혹한 참상 속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여전히 가해자들과 오랜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다행히 강제동원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법원 판단이 잇따르고 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송은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버겁기만 하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미쓰비시重 상대 손배소 잇단 승소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숨진 피해자의 유족 등이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광주지법 민사1단독 김현정 부장판사는 지난 8일 김영옥씨(85)와 고 최정례씨의 조카며느리 이모씨가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김씨에게 1억2000만원, 사망한 최씨의 유족에게 상속분에 해당하는 325만6648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김씨와 최씨는 10대 시절 '돈도 벌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서 급여 한 푼 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에 시달렸다. 이들은 1944년 말께부터 매일 공습 위험에 떨어야 했고 같은 해 12월 최씨는 동남해지진 발생으로 공장이 무너지면서 건물 잔해에 깔려 사망했다.
재판부는 "현 미쓰비시중공업은 구 미쓰비시중공업을 실질적으로 승계해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기 충분한만큼 피해자들은 구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며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11일 광주지법 민사11부 김상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고 오길애씨의 남동생 오씨와 김재림씨(87), 심선애씨(87), 양영수씨(86) 등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각각 1억원에서 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같은 취지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일본에서 노동내용이나 강도 등을 잘 알지 못한 채 연행돼 강제로 위험하고 혹독한 노동에 종사했다"며 "서신교환을 제한받고 열악한 숙소와 부실한 음식만 제공받았을 뿐 급여조차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쓰비시가 침략전쟁을 위한 전쟁물자 생산에 강제로 동원하고 노무제공을 강요한 행위는 당시 일본국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에 적극 동참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어떤 안전조치나 구호조치 없이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부상당한 사람을 방치한 것은 위험한 업무에 종사시키지 말아야 할 의무, 안전배려의무 및 보호의무까지 방기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日전범기업 소송 지연, 피멍 드는 피해자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국내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손해배송 소송은 현재 14건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피고기업인 미쓰비시를 비롯해 신일철주금, 후지코시 등은 재판과 무관하게 소장 수령을 거부하는 등 고의적으로 '시간끌기'에 나서면서 소송이 장기화되고 있다. 11일 재판은 1심 판결에만 무려 3년6개월이 소요됐다.
문제는 1~2차 소송에서 승리했더라도 일본 기업들이 판결에 불복해 곧바로 상고,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더디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평균 90세가 넘는 피해자들은 판결도 보기 힘든 현실이다.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은 1·2심에서 원고 청구가 기각된 후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돼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에서 각각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상고로 4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두 사건은 대법원에 3년 계류한 끝에 승소한 것으로, 대법원에만 무려 7년째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이상갑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두 사건의 경우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던 중 피해 당사자들이 고령으로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며 "일본법원에서 재판이 지연되면 그저 답답한 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한국법원이 이러한 중대한 재판을 오래가지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대법원의 빠른 판결을 촉구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