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를 인수해 계획적으로 주가를 조작하는 기획·복합형 불공정거래 행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정체가 모호한 투자조합을 내세워 시가총액이 적은 상장사를 인수한 후 자금조달부터 시세차익을 남기고 빠져나가기까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는 올해 상반기 이상매매 동향을 분석한 결과 10종목에 대해 기획형 복합불공정거래 사례를 포착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들은 총 2311억원, 종목당 231억원의 불법이익을 챙겼다.
시감위에 따르면 이들의 수법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경영권을 확보한 후 3자배정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이어 허위사실 유포나 호재성 공시로 주가를 끌어올린 다음 주식을 매도해 차익을 남기고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미공개정보를 이용하거나 억지로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세력들 간에 통정거래 등의 방법도 이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무자본 인수합병(M&A)을 숨기기 위해 전문가를 실제 인수자처럼 내세우는 방법도 동원됐다.
시감위는 불공정거래를 주도하는 세력들이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식은 실체 확인이 어려운 투자조합이나 비외감법인을 내세워 대체로 시가총액이 300억원 이하인 상장사를 노린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10종목 가운데 4개는 투자조합, 3종목은 비외감법인이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108억원에 상장사 경영권을 사들였다.
이를 주도한 주요 혐의자는 최대주주나 회사 관련자가 각각 70%와 30%를 차지해 모두 내부자들이었다. 일단 상장사 경영권을 인수하면 유상증자와 사채발행으로 자금을 모으고, 이는 대부분 실체가 모호한 비상장사 지분 취득에 사용한다. 사실상 엉뚱한 곳으로 돈이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셈이다.
이들은 난데 없이 자율주행이나 화장품, 면세점 등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신규사업 진출을 남발하거나 호재성 공시를 내보내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담보계약 체결 등 불리한 내용을 누락해 수차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번에 시감위에서 찾아낸 10종목 중 절반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주가가 300% 이상 급등했으며, 이를 주도한 세력들이 빠져나간 후 4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감위는 상장사를 인수한 최대주주가 인수자금을 차입으로 마련했거나 인수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경우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최대주주 변경 전후에 지나치게 언론 홍보에 나서거나 신주인수권, 전환권 행사 전후에 거래량이 급변하는 경우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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