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新 청춘백서] “거짓말 어디까지 해봤나요?” 웃픈 직장인들의 삶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02 09:00

수정 2017.09.02 16:56

[新 청춘백서] “거짓말 어디까지 해봤나요?” 웃픈 직장인들의 삶

강경일(27·가명)씨는 부장이 점심 식사를 제안하면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입사 후 몇 달 간은 윗사람 지시사항이라고 생각해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 시간을 뺏기고 자리가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강씨는 “어느 날은 맛집에 가자고 해서 차를 타고 30분간 이동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업체 사람들이 있었다”며 “비싸고 맛은 좋았지만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젓가락질을 하다 보니 소화가 안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식사 후 업체 사람이 결제했는데 부장이 생색을 내는 모습을 보고 화도 나고 황당했다고 전했다.


인천에서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서창민(28·가명)씨는 최근 회사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평소에 출퇴근 시간만 왕복 4시간이 걸려 시간도 아깝고 무엇보다 몸이 지친 이유가 가장 컸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일찍 출발했는데도 집에 도착하면 12시가 넘는 건 다반사였고, 간혹 집에 가지 못하고 모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등 의도치 않게 외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씨는 회사 동료들에게 이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회사 근처에 집을 얻었다고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불러 불필요한 술자리가 생길 수도 있고, 회식 때도 집이 멀어 일찍 출발했는데 그런 장점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씨는 “회사 근처에 사는 친구에 의하면 회식이 늦게 끝날 경우 간혹 회사 동료가 재워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차피 혼자 사는 걸 알아서 거절하기 힘든 경우를 봤다”며 “회사 근처에 사는 걸 숨기기 위해 혼자 늦게 퇴근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씨는 가끔 상사가 번개를 요청할 때도 집이 멀다는 이유로 거절을 한다. 서씨는 “상사는 번개를 할 때마다 회식 이외에 술 마시자고 미리 공지를 하면 부담스러워할까 봐 번개를 선호한다고 말했다”며 “말은 시간 되는 사람만 참석하라고 하는데 눈치가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직장인은 대부분 가족, 친구보다 회사 동료들을 더 자주 본다. 하루 24시간 중 최소 8시간은 회사에 있으니 당연하다. 이렇게 붙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업무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불필요한 접촉이 생긴다. 공사 구분이 애매해지고 불쾌한 일들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미흡하거나 석연치 않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타협해 버리고 넘어간다. 이런 현실 때문에 직장인들은 최대한 상대에 밉보이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과 휴식을 갖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다.

[新 청춘백서] “거짓말 어디까지 해봤나요?” 웃픈 직장인들의 삶

이제 입사 한지 1년이 갓 넘은 홍예슬(27·가명)씨는 점심이 먹기 싫어 자리에서 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20분쯤 지났을 무렵 상사가 밥을 먹고 들어오더니 산책을 제안했다. 10~20분 걷다 오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홍씨는 상사와 함께 회사 뒷길을 걸었다. 그런데 홍씨의 예상과는 달리 상사는 점심시간 내내 걷다가 회사로 복귀했다.

홍씨는 “그렇게 걷고 싶으면 혼자 다녀오면 되는데 굳이 나까지 끌어들인 이유를 모르겠다”며 “단둘이 걷는 그 시간이 마치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홍씨는 그 이후로 점심시간에 쉬고 싶으면 가까운 카페로 향한다고 전했다.

입사 3년차 오수진(28·가명)씨는 해가 거듭될수록 연기력(?)이 늘어간다. 회사의 공식적인 행사 이외에 상사나 동료들의 번개를 거절하면서 속이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였다. 오씨는 “일 년에 두 번 가는 회사 워크샵이나 간혹 부서 화합을 위해 하는 회식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굳이 내 시간을 내면서까지 번개에 참석하고 싶지 않다”며 “심지어 주말에 등산 가자는 제안은 최악”이라고 말했다.

이경훈(30·가명)씨는 회사에서 사적인 일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굳이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고 알려지면 점심시간이나 회식 자리에서 이야깃거리만 되기 때문이다. 이씨는 “예전 회사에서 애인이 있다고 말했는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상사가 있었다”며 “그 이후로 회식할 때 마다 꼬치꼬치 물어봐서 기분이 상당히 불쾌했다”고 밝혔다. 이어 “굳이 이렇게까지 속여야 하나 생각도 들지만 거짓말을 하면서 오히려 편해졌다”고 덧붙였다.

회사일과 개인 사생활의 구분이 애매해지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건 아직도 우리나라의 직장문화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상사가 지시하면 부당해도 이행해야 되고, 개인보다 회사가 중요하다는 인식도 문제다.

사람이 회사를 다니는 근본적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다. 친목도모가 최우선이 아니다.
휴식이나 퇴근 이후의 시간, 주말을 활용해 소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업무 시간 이외에는 개인의 휴식을 보장해줘야 한다.
직위를 이용한 소통은 오히려 불통만 일으킬 뿐이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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