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제주비엔날레 개막
【 제주=박지현 기자】 일제시대 제주도민 강제 징용의 상처가 있었던 곳이 예술 공간으로 변모했다. 바로 제주 남서쪽 모슬포항 근처에 자리잡은 알뜨르 비행장이다. ‘투어리즘(Tourism)’을 주제로 지난 1일 개막해 오는 12월 3일까지 열리는 제1회 제주비엔날레의 전시 공간 중 하나로 선택된 알뜨르 비행장은 어두운 과거의 상처를 돌아보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대표적 공간으로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제주도 말로 ‘아래 벌판’을 의미하는 ‘알뜨르’는 조선시대까지 제주도에서 몇 안되는 비옥한 평원으로 지역민들이 각종 밭 작물 농사를 짓던 곳이었으나, 1920년대부터 일본군이 이곳에 군용 비행장을 설치하기 위해 모슬포 주민들을 동원해 강제 노역을 시킨 아픈 상처가 있는 곳이다. 해방 이후 국방부에 소유가 이관됐고 지난 2006년 11월 29일 격납고와 지하벙커 동굴진지, 고사포 진지 등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는 지역 농민들이 일부 지역을 국방부로부터 임대받아 다시 농사를 짓고 있다.
일제시대의 흔적인 격납고 수십여개가 이제는 잡초와 수풀에 싸여 곳곳마다 흩어져 있는 이곳에 8명의 미술작가가 작품을 설치했다. 강문석 작가의 ‘기억’은 격납고 속에 철근으로 만든 비행기를 설치한 작품이다. 일본군이 1940년 태평양전쟁때 많이 사용됐던 제로센 전투기를 형상화했는데 한쪽 날개는 부러져 있고 반대쪽은 아예 없는 상태로 격납고 안에 들어서 있다. 또 뼈대만 남은 비행기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김지연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전쟁이 남긴 폐허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평화를 꿈꾸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라며 “과거 상처의 땅이었던 알뜨르 비행장이 평화와 치유의 싹을 틔우는 곳이 되길 바라는 작가의 소원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김해곤 작가의 작품 ‘한 알’도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큰 공 모양의 황금색 천으로 이뤄진 작품이 바람에 나부끼는데 마치 나무에 달린 ‘노란 손수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밀 한 알의 탄생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알뜨르 비행장이 지닌 전쟁의 역사가 치유되고 이곳에 새로운 한 알의 생명이 잉태돼 평화의 시작을 알린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동학농민혁명의 농민군들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공주 우금치와 임진각 평화누리 등에 대나무 죽창을 둥글게 엮어 만든 대형 설치작품을 만들어온 작가 최평곤의 ‘파랑새’도 알뜨르에 우뚝 섰다. 9m 높이의 파랑새를 안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밖에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이바이유(IVAAIU)의 ‘커뮤니티 퍼니처’와 구본주 작가의 ‘갑오농민전쟁’ 등의 작품이 알뜨르 비행장에 설치됐다.
이번 제주비엔날레에는 국내외 15개국에서 온 작가 70팀이 참여했다. 제주도립미술관의 ‘관세지광(觀世之光)’을 비롯해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에코투어’, 제주 원도심 및 예술공간 이아(IAa)에서 ‘어반투어’를 주제로 전시가 진행되고 알뜨르 비행장 일대와 대정마을, 진지동굴, 산방산에서 다크 투어리즘 ‘관세지암(觀世之暗)’, 서귀포시 원도심 이중섭거리와 솔동산거리, 창작스튜디오, 이중섭미술관, 관광극장, 자구리 해변 등지에서 ‘듕섭의 산책’ 등 5가지 주제의 전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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