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 구이·귀신의 집·갤러리…밤이 되면 '테마파크'같은 시장
【익산(전북)=이보미 기자】 지난 21일 전북 익산시 중앙매일서동시장. 오후 5시 30분이 지나니 시장 한 거리 가운데 간이 테이블들이 줄 맞춰 세워지기 시작했다. 액세서리, 디퓨저, 캐리커처 매장부터 떡볶이집, 꼬치집, 새우구이집, 베트남 쌀국수집 등 먹거리 매장이 하나하나 모습을 갖춰나갔다. 저녁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리자 상인들 목소리만 간간히 들리던 재래시장에선 유모차를 끌며 걷는 엄마 아빠와 들뜬 아이들이 대화 소리가, 젊은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후 6시 익산 중앙매일서동시장의 야시장 '야시시 으시시 배시시'가 문을 열었다.
■'시즌 3'도 진행, 상인들 "젊은 고객 보여 뿌듯"
1947년 설립된 중앙시장과 매일시장, 서동시장은 3개 시장은 한 블록 안에 형성되어 있다. 익산역에서 걸어서 5분정도 거리로 1970~1990년 호시절엔 시장 인근에선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히고 다녔다'는 게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제조업이 흔들리면서 불황이 이어지고 전통시장을 찾는 발길도 뜸해졌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시장의 주요 고객은 50~60대 주부인데 이들이 시장에 나오지 못할 시기가 되면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문화관광형시장사업단이 제안한 것이 바로 '야시장'이었다. 사업단은 시장 상인들과 선진 사례로 꼽히는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 등을 함께 돌아보며 변화한 과정을 보여주며 설득했다. 시범 사업을 시작한 지난해에는 5곳 상인만 야시장 '셀러'로 참여했지만, 호응이 좋자 참여하는 상인도 늘고 있다.
실제 지난 7월22~8월31일 진행한 시즌1때 누적방문객수는 1만2000여명, 야시장전 평균 주말 방문객수와 비교할 때 1000% 이상 증가했다. 시즌 2기간인 현재 누적방문객수는 1만5000여명. 평균 매출액도 약 30% 늘었다는게 시장단의 설명이다. 이렇다보니 익산시의 요청으로 '시즌 2'로 마무리하려던 야시장을 연말까지 '시즌3'를 진행한다.
상인들도 평소 팔던 품목이 아니라 야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새로 만들었다. 정육점 사장님은 소시지 구이와 불고기를, 수산물 매장 사장님은 오징어 통구이나 새우구이를 파는 식이다.
'셀러'로 참여중인 검정돼지한우정육점 전용훈 사장은 "상인들이 솔선수범해야 재래시장이 활성화된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며 "페이스북등 SNS홍보를 통해 중고등학생들의 입소문을 타고 야시장이 알려지면서 가족 단위 고객이 늘어났고, 평일에도 젊은 주부 고객층이 눈에 띄는 등 야시장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웃었다.
사업단은 상인 이외에도 프리마켓 셀러들도 따로 유치했다. 야시장 프리마켓은 식음료 매대 20곳, 캐리커처·페이스 페인팅 등 체험형 매대 20곳 등 골고루 구성했다. 특히 청년 사업자들이 셀러로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 상품이 야시장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는 데다 장기적으로 이들의 전통시장 내 창업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야시장 컨셉트에 맞게 '호러빙수' 등을 내놨던 청년 셀러 매장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장인영 익산중앙매일서동시장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 팀장은 "시즌 2인 현재 셀러로 참여한 상인들이 초기보다 늘었고 현재 가게에서 야시장 메뉴를 만들어 파는 상인도 증가하는 추세"하며 "겨울에 시작할 시즌 3에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셀러가 아닌 상인들도 야시장 활성화에 동참하고 있다. 평소 7시정도에 셔터를 내렸던 통닭 가게 사장님도 의류 가게 사장님도 야시장이 열리는 토요일은 늦게까지 매장 불을 밝힌다. 불꺼진 매장이 있는 전통시장 거리에 손님이 오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두운 시장 뒷골목에 빛이 들다
"얘는 무서워서 안들어간대요", "그냥 셋이 같이 가자", "아 그냥 들어갈까."
중앙시장 뒷골목에 들어서니 귀여운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3, 4, 5학년이라는 남자 아이 3명이 두 눈을 반짝이며 귀신의 집 앞까진 호기롭게 왔지만 막상 들어가려니 걱정이 된 듯 했다. 처녀귀신 분장을 하고 매표소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여기 무서워요?", "귀신 때리면 어떻하지?"라며 질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귀신의 집 특유의 오싹한 소리와 함께 '우악' 하는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귀신의 집'은 가족 단위 고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체험형 콘텐츠중 하나다. 지난 여름 남녀노소 할 것없이 인기를 얻으며 시즌2에는 방탈출 형식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귀신의 집이 있던 이 골목은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정비가 완료된 전통시장 주요 상점 거리에서 조금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딴 세상인듯 했다. ○○의상실·○○양품·메리야쓰·주단 전문 등이 걸려있는 간판은 마치 1980~90년대 드라마 셋트장 같았다.
양향숙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 단장은 "이전에 뒷 골목은 오가는 사람이 적은데다 사용하지 않은 공간도 있어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골목마다 환한 조명을 달고 지역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갤러리로 만들었다. 쓰지 않는 공간은 그대로 살려 귀신의 집으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한 두명 정도가 걸을 수 있는 좁은 골목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인증샷'을 찍는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재봉틀을 돌리고 있던 아주머니에게 이들이 방해가 되지 않느냐 묻자 "젊은이들이 여기까지 들어오니까 활기차고 난 좋은데"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양향숙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 단장은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든 연령대가 '테마파크'처럼 먹거리, 즐길거리, 볼거리 등 다양한 형태의 즐거움을 느낄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시즌 3부터 시장 상인이 주체가 되어 야시장을 이끌어가는 만큼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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