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민간소통 창구 역할.. 권력과의 고리 끊고 환골탈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년 전 '최순실 게이트'로 여론의 포화를 맞았다. 이후 전경련은 환골탈태했다. 조직은 크게 쪼그라들고 사람들도 대거 나갔다. 현재 전경련은 한발 물러나 민간 경제외교와 싱크탱크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엄치성 국제협력실장(상무.사진)은 전경련 민간 경제외교분야의 수장이다. 엄 실장은 1990년 전경련 입사 후 20년간 국제협력 업무를 맡은 '국제통'이다.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전담팀(TF)으로 활동했으며 성공적 개최 공로로 산업자원부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12년에는 여수 엑스포 개최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엄 실장은 전경련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전경련은 31개 국가에서 32개(중국 2개) 경제협력위원회를 보유하고 있어 한달 이상을 한국에 있지 못한다. 올 초 비행거리로만 그는 100만마일(160만㎞)을 넘겼다.
최근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속에 민간외교 기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전경련은 미국, 대만, 일본 등 주요국과 외교관계가 경색됐을 때 빛을 발한다. 정부를 대신해서 민간 차원의 경제외교를 전개하는 게 전경련의 고유 기능이다.
G3(미.중.일) 등 31개 전략국 대표기업과 평균 30년의 연례행사를 열고 우리 기업의 해외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는 판도 전경련이 깐다. 미국, 일본, 중국과의 재계회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전경련의 존재 이유는 쿠바·대만 등 미수교국과의 민간교류, 한·미 재계회의를 통한 FTA 재협상 관련 민간소통창구 등 정부나 개별기업 차원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데 있다고 봐요. 정부와 기업이 본연의 활동을 더 잘 할 수 있게 윤활유를 발라주는 거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거세지면서 재계는 '전경련표 윤활유'가 더 절실한 상황이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전경련은 미.중.일을 오가며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엄 실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과 관련, 미국 상공회의소조차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직접 듣고 왔다.
"추석연휴 미 워싱턴을 방문해 한·미 재계회의를 열고, 지난달에는 일본에서 한·일 재계회의를 열었어요. 현지의 고위인사를 만나 반덤핑, 세이프가드 우려 등 통상현안과 같은 한국 경제계의 진솔한 의견을 전달하고 왔습니다. 해빙무드가 전개되고 있는 중국과도 한·중 재계회의를 다시 열기 위해 이미 협의 중입니다."
아울러 한국 청년의 구직난과 일본 기업의 구인난 해소를 위해 내년 봄 한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일본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세미나도 일본 측과 추진 중이다.
전경련은 대륙.지역별 경협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아시아.중유럽.아프리카.중남미 등 4개 지역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APEC,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국제기구 산하 경제자문위원회에서 한국대표로 활동 중이다.
전경련은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국민생활 증진 및 국가브랜드 제고에도 힘을 보태왔다. 지난 1970년대 건강보험이 도입될 수 있도록 의료보험연합회를 설립했고, 전경련 회장단은 88서울올림픽.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등 국제적 행사 유치에도 기여했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전국 지자체에 101개 어린이집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런 전경련의 성과는 물거품이 됐다. 최근 6개월간 전경련은 뼈를 깎는 쇄신을 단행했다. 앞으로 전경련은 과거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기여했던 50여년의 전통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민간경제외교 기능을 강화하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방침이다. 어쩌면 권력에서 해방된 지금이 재계 '맏형' 전경련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엄 실장의 짧고 강한 마지막 말에서 의지가 배어난다. "지켜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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