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스트리트

[fn스트리트] 존엄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22 17:15

수정 2017.11.22 17:15

1997년 겨울 한 남자가 뇌를 다쳐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다. 상태가 나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환자 가족은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퇴원을 요구했다. 병원 측은 처음엔 말렸다. 이후 사망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은 뒤 환자를 퇴원시켰고 환자는 얼마 뒤 사망했다.
사건은 법정다툼으로 번졌다. 대법원은 '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환자 퇴원'은 유죄라고 판결했다. 환자 가족과 의료진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았다.

이 사건은 존엄사 찬반 논쟁에 불을 지폈다. 찬성하는 쪽은 환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시민단체들이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죽음을 환자의 의사에 반하여 인위적으로 늦추는 것은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종교단체들은 생명윤리를 내세워 반대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고 맞섰다. 논쟁은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결정에 관한 법'(존엄사법 또는 웰다잉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거의 19년을 끌었다.

존엄사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맞이하는 죽음이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놓아주는 것이다. 적극적 의미로는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로 해석되기도 한다. 의학계에서는 그냥 '연명의료 중지'라고 부른다. 복잡한 논쟁을 피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존엄사법은 내년 2월부터 전면 시행된다. 현재는 시범시행 중인데 이 법에 따른 합법적 존엄사 1호가 나왔다. 소화기암 환자인 50대 남성이 지난주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항암제 투여 등의 연명치료를 거부한 채 사망했다. 20일 현재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1648명,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사람은 7명이며, 이 중 한 명이 존엄사했다.

죽음도 삶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한다.
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일상의 삶에 몰입한 나머지 죽음을 망각하거나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경향이다.
그래도 죽음은 다가온다. 삶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것처럼 죽음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지 않을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