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큐레이터'. 홍승범 농촌진흥청 박사(사진)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농진청에 미생물은행(KACC)이 만들어진 지난 1995년부터 지금까지 23년째 국내 곰팡이 자원을 수집, 보존, 관리하는 일을 도맡고 있으니 그보다 더 적합한 수식어도 없을 것 같다.
홍 박사는 "곰팡이라고 하면 다들 지저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발효식품 특히 우리 장맛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이 곰팡이"라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곰팡이를 수집해 미생물은행에 보존·관리하고, 관리된 품목을 인터넷에 올려 필요로 하는 이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다름 아닌 메주. 벌써 10여년 전부터 메주 곰팡이를 모으고 있다. 홍 박사는 "흔히 '손맛'이라고 말하는 우리 전통 장맛의 비결은 메주의 곰팡이에 있다"며 "직접 장을 담그시는 분들이 연로하신 탓에 이 곰팡이를 수집해두지 않으면 이 맛을 계승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홍 박사는 일본이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막걸리 누룩(아스페르길루스 루추엔시스)에 붙였던 학명을 바로 잡기도 했다. 유전공학을 전공한 그는 세계 최고의 곰팡이 자원센터인 네덜란드의 CBS와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곰팡이 자원에 대한 안목을 높였다. 아스페르길루스 분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이상하게도 그 명칭이 하나같이 '일본식'이라는 게 이상했다. 아스페르길루스 루추엔시스의 과거 학명인 아스페르길루스 카와치의 그 카와치도 일본 양조업자 이름이었다"며 "미숙한 일본어로 1900년대 고문헌을 조사하면서 카와치란 학명이 잘못됐다는 점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루추엔시스는 본래 '흑색 곰팡이'로 카와치란 일본 양조업자가 곰팡이를 보관하고 키우다 보니 백색의 돌연변이가 나왔다는 것. 그 돌연변이를 분리해서 술을 만들어보니 여러 장점이 나왔고, 이 균에 대한 특허를 내게 되면서 그 명칭이 양조업자의 이름인 '카와치'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홍 박사는 "그러나 카와치가 발견한 이 돌연변이, 루추엔시스는 과거에 보고된 종이었지만 사장된 종이란 걸 알게 됐다"며 "지금은 국제적으로 루추엔시스를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막걸리에 쓰는 곰팡이에 일본 양조업자 이름이 붙는다는 게 어딘지 꺼림칙했다는 게 홍 박사의 설명이다.
현재 홍 박사는 이 루추엔시스의 '짝짓기'에 주력하고 있다. 배우자를 만나서 자신과 다른 진정한 후손을 만들어야 더 좋은 술을 만들 새로운 균주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곰팡이가 암수에 의해서 포자를 만드는 걸 유성생식이라고 하는데, 루추엔시스는 독신을 고집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루추엔시스는 수컷밖에 발견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메주 곰팡이에서 두 종의 암컷을 발견했다.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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